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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석 칼럼] 죽음에 대한 몇가지 생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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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누구도 피할 수 없다. 불가항력이라며 서로 쉬쉬할 뿐이다. 7년 전 『만남, 죽음과의 만남』을 펴냈던 전 서울대 종교학과 정진홍 교수의 말대로 죽음, 그것을 화제로 올리는 건 “때론 무례하기도 하고, 불쾌한 일”이다. 그런대도 최근 이런저런 모임에서 죽음 얘기가 많이 나왔다. 행복전도사 최윤희 자살이 계기였다. 죽음이 금기어의 족쇄에서 풀린 것일까? 아직은 공개적 논의가 적지만, 최씨의 선택은 연명치료 중단을 결정했던 올 초 김 할머니 사례와 함께 생각의 실마리를 던져줬다.

 많은 대화 중 함축적인 게 가수 조영남의 발언이다. “최윤희가 선수를 쳤어.” 제3자가 들으면 오해할 수 있겠지만, 내 귀엔 아주 명쾌했다. 누구나 고유한 삶을 추구하듯, 그에 어울리는 마무리 역시 각자의 몫이라는, 아주 쿨한 태도다. 추석 전 TV토크쇼에서 그는 “나 죽으면 멍석에 둘둘 말아 화장해줘”라고 하지 않았던가? 다른 자리에서 만났던 출판사 푸른역사 박혜숙 대표도 말했다. “최윤희 선생에게 그 선택은 마지막 행복이었을걸요?” 왜냐고 물어봤다. “100세 수명시대 아녜요? 등 떠밀려 갈 순 없죠.”

 화제는 자연스레 죽음의 방법에 모아졌다. 보다 다양한 ‘열린 죽음’ 지지 쪽이 대세였다. 다른 모임에서 만난 KBS 조휴정 PD 부부도 그쪽이었다. 내내 경청하던 의사 장근호(이비인후과)는 우리 일행을 의사들의 죽음학 스터디 모임에 초대했다. “독회(讀會)와 강연을 번갈아 진행해왔는데, 20일에는 그리스철학을 전공한 김수영 박사(문학과지성사 대표)가 발제합니다.” 세상은 참 빠르게 변하며 각 분야에서 죽음을 논의 중인데, 이제는 어떤 분기점에 도달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이전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회장 김옥라)가 20년 가까이 활동하고 있지만 관련 출판물도 꽤 된다.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김열규), 『해피 엔딩-우리는 존엄하게 죽을 권리가 있다』(최철주)가 그렇고, 4년 전 호스피스 활동을 토대로 쓴 『인생 수업』(E 퀴블러 로스)은 베스트셀러로 떴다. 이들의 공통 메시지는 존엄사·안락사를 포함한 죽음 논의를 할 때가 지금이란 지적이다. 김 할머니 사례에 앞서 회복 불능 환자에 대한 연명치료는 중단될 수 있다고 판시한 대법원 판례(지난해 5월)도 있었다. 존엄사 법안도 시민단체 입법 청원과 의원 발의로 국회 계류 중이다.

 죽음을 미화할 뜻은 전혀 없다. 다만 죽음, 그리고 웰다잉을 말하는 건 퇴행적 논의, 혹은 불쾌한 화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본디 배꼽을 마주 대고 있는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은 ‘지금 이곳’을 돌아보는 훌륭한 기회다. 스토아철학의 운명론이기도 하다. 지난주 사진가 윤광준과의 통화를 마저 소개하자. 그가 대뜸 이랬다. “선배, 데드마스크 하나 뜰래요?” “…” “제가 아는 화가 한정욱씨가 작업해주는데, 전 이미 했어요. 묘하더라고요. ‘유서 미리 쓰기’ 같은 거….” 얼떨떨했지만 제안을 덥석 받았다. “윤형, 오케이야!” 삶이 단단할수록 죽음과도 친해질 수 있겠다는 직감 때문이었다.

조우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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