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박물관 체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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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암각화에서부터 피카소에 이르기까지 얼굴은 영원한 미술의 소재다. 시대를 풍자한 다양한 미술품 중 얼굴만큼 그 당시의 문화를 잘 나타낸 오브제도 드물다. 그런 얼굴들이 한자리에 모인 곳이 있다. 경기도 광주시 분원리에 위치한 얼굴박물관에 하남 꽃피는학교 5학년 학생들이 방문했다.

 “시공을 넘어서 옛사람을 만나고 싶은 사람은 들어오시오.” 라혜민양이 육중한 철문에 쓰여있는 글귀를 크게 읽는다. 얼굴박물관을 들어서는 관문이 이곳의 성격을 말해준다.

 이날 방문의 첫 번째 코스는 ‘얼굴 그리기 체험교실’. 손바닥만한 돌에 생각나는데로 얼굴을 그리는 것이다.

 “선생님, 어떻게 돌에 그림을 그려요.” “물감으로 그리면 흘러내릴 것 같은데…. 신기하다.”

 돌을 받아든 아이들은 마냥 신기하다는 반응이다.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던 김정옥(78) 관장은 “이 세상 모든 물건엔 예술혼이 깃들어 있다”며 “이 작은 돌에도 여러분이 상상하는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박물관 큐레이터인 화가 김승균씨의 안내로 얼굴 그리기가 시작됐다.

 먼저 흰색 종이에 자신이 그릴 그림을 스케치 해본다. 가장 먼저 떠오른 얼굴을 그리는 것이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이 자신의 얼굴을 선택했다. 김씨는 “체험에 참여하는 아이들 중 열에 아홉은 자기 얼굴을 그린다”며 “자신의 현재 심리상태를 그대로 나타내는 아이들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정말 재미있다”고 귀띔했다.

 스케치가 끝나면 이를 바탕으로 돌에 얼굴을 그리기 시작한다. 돌에 그리는 그림은 의외로 쉽고 간단하다. 크레파스와 색연필, 그리고 일명 보드마카로 불리는 화이트보드 펜이 재료의 전부다. 배현우군은 “돌이라서 뭔가 특별한 재료를 사용할 줄 알았는데 우리가 평소에 쓰던 그림 그대로 그린다”고 말했다.

 서로의 얼굴을 힐끗거리며 웃고 장난치는 사이에 각자의 얼굴이 완성됐다. 자신이 그린 얼굴은 집으로 가져갈 수도 있고 박물관에 자신의 이름을 달아 전시할 수도 있다.

 최근 서유럽을 여행하고 돌아왔다는 김관장은 아이들에게 대뜸 여행 이야기를 꺼냈다. “프랑스, 폴란드, 독일 등지의 박물관에 지금까지 보지 못한 ‘brut’라는 전시공간이 있더군요. 프랑스어로 ‘거친’‘가공되지 않은’이라는 뜻인데, 우리가 주변에서 쉽게 보고 지나치는 것이 훌륭한 예술적 의미를 지닌 미술품이 되는 겁니다. 우리 얼굴 박물관이 바로 그 ‘brut’를 표방하는 것이에요.”

 2004년 문을 연 얼굴박물관에서는 김정옥 관장이 지난 40여 년간 세계 각지에서 모아온 미술품들을 만날 수 있다. 팔순에 가까운 나이에도 극단 ‘자유’의 예술감독으로 왕성한 문화활동을 펼치고 있는 김 관장은 “직접 세어보진 않았지만 아마 1천여 점 정도는 될 것”이라며 “내가 돌아보지 않았다면 그냥 쓰레기로 없어져 버릴 것들이 여기서는 소중한 미술품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박물관 바깥마당에는 전국 각지에서 모아온 문인석과 무인석, 벅수(돌로 만든 석장승과 나무로 만든 목장승 등을 일컫는 순 우리말)도 만날 수 있다. 또 시인 김영랑 집안 소유였던 한옥을 전남 강진에서 직접 옮겨와 그대로 복원한 전통가옥 ‘관석헌’이 자리하고 있다. 김 관장 부부가 실제 별장으로 사용하고 있어 아이들에게 전통가옥의 실용성과 멋을 보여줄 수도 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관람 가능하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 화·수·목요일엔 반드시 전화예약을 해야 관람할 수 있다.

[사진설명] 얼굴그리기 체험을 끝내고 석인상 마당에서 포즈를 취한 하남 꽃피는학교 라혜민양, 박재형, 신현우, 배현우군.(왼쪽부터)

<김지혁 기자 mytfact@joongang.co.kr 사진="김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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