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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협상 성공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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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2014년에 시효가 만료되는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협상이 오는 25일 워싱턴에서 시작된다. 1974년 체결된 한·미 원자력협정을 개정하는 이번 협상은 2013년까지 3년간 진행된다. 새로운 협정을 만들어 내지 못하면 저농축 우라늄을 전량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한국의 원자력산업은 큰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30여 년 전 걸음마 단계나 다름없었던 한국의 원자력 수준은 이제 세계 제5위의 원자력 강국으로 발돋움했다. 아랍에미리트에 4기의 원자로를 수출하게 됨으로써 세계에서 6개 국가밖에 없는 원자로 수출 국가가 됐다. 반면 원자력 에너지 이용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는 과거보다 더욱 증폭되고 있다. 원자력 에너지는 평화적으로만 이용하면 에너지자원이 부족한 한국·일본에서는 더 없이 유용한 발전 수단이다. 하지만 핵무기 개발 등 군사적 이용을 겨냥하는 국가나 집단의 활동을 차단하지 못하면 핵무기의 무차별적 확산에 직면하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문제는 양국 간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관심사다. 원자력 에너지의 평화적 이용의 자율성과 핵무기 전용 가능성의 절대적 차단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측면에서 보면 한국으로선 농축 우라늄을 어떻게 하면 과거보다 자유롭게 획득할 수 있느냐를 미국과 협상해야 한다. 사안별로 미국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원자력 활동에 대한 동의방식의 수정, 사용후 연료의 재활용 방식 등 논의해야 할 사안이 산적하다. 20기의 원자로가 가동되고 있고 2030년이면 전기에너지의 50% 이상을 원자력에 의지해야 하는 한국은 원자력 에너지의 평화적 이용을 더욱 확대해야 하기 때문에 74년의 현실과는 엄청나게 다르다는 점으로 미국을 설득해야 할 것이다. 그중에서 가장 쟁점이 될 사안은 사용후 연료의 처리문제다. 2010년 6월 현재 사용후 연료, 즉 폐연료봉은 원전 부지 내에 약 1만1000t이 임시 저장되어 있고, 2016년이면 임시 보관이 포화 상태에 이르러 특정 부지를 선정해 중간 저장이라는 형태로라도 이전 보관하지 않으면 안 될 형편에 있다. 중간 저장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이유는 사용후 연료의 핵비확산성, 즉 핵무기 제조에 전용될 가능성이 없는 재활용 기술을 개발하게 되면 자원이 부족한 한국으로서는 재활용자원이 되기 때문이다. 원전 부지 내에 저장되어 있는 사용후 연료의 재활용 가능성을 포기하고 직접 처분하게 되면 국토가 좁은 한국으로서는 감당이 안 될 핵폐기물 직접 처분장을 준비해야 한다. 여의도 면적의 몇 배에 달하는 처분장 부지를 찾아야 한다.

 그러나 재활용 기술을 적용하면 폐기물 양도 줄이게 되고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재활용 에너지 자원이 가능하기 때문에 한국은 그 길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우선 가장 크게 내세우고 있는 재활용 방법이 파이로 프로세싱(Pyro Processing)이라는 기술이다. 그런데 이 기술은 아직 연구 단계에 있고 지금까지 개발된 기술 중 그래도 핵무기 개발에 가장 관계가 적은 기술로 평가되고 있다. 일본처럼 사용후 연료를 재활용(재처리)해 플루토늄을 뽑는 방식과는 달리, 여러 가지 혼합물 형태로 추출하기 때문에 핵무기 전용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다. 그러나 핵무기 확산에 민감한 미국은 이마저도 용납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혼합물 형태라도 나중에 새로운 기술로 핵무기 원료를 추출하게 된다면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협상의 성공을 위한 협상전략을 제안해 본다. 첫째, 한국의 핵무기 비확산 노력을 재삼 미국에 각인시키는 것이다. 91년 한반도 비핵화 선언에서부터 2012년 핵안보정상회의의 한국 유치 등 세계의 비핵화 기조에 앞장서 온 한국이다. 둘째는 원자력 수출을 미국과 협력하면서 추진해 미국의 진정한 원자력 파트너이고, 미국 경제에도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하게 해야 한다. 셋째는 미국이 파이로 프로세싱이라는 재활용 기술에 제동을 걸고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이 문제를 거론하지 말고 미국과 공동 연구하면서 신뢰의 투명성을 확보하도록 해야 한다. 한국의 원자력산업이 먹을거리 기간산업이 되어 있다는 현실을 직시하는 협상이 돼야 한다.

김경민 한양대 정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