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 패션 스토리] 여자 몸매, 허리 사이즈 같아도 체형은 3가지 타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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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2면

‘핏 마스터’가 글로벌 모델인 DJ 미스나인의 체형을 재고 있다. 미스나인의 커브ID는 ‘27 볼드’.

청바지가 맞지 않을 때 남녀의 반응. 남자: “아니, 뭐 이딴 걸 옷이라고 만들어?” (곧바로 집어다 버린다) 여자: “아우, 어떡해. 나 또 살쪘나봐.” (나중에 입으려고 모셔둔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옷이 아니라 몸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옷에 몸을 맞추겠다고 다이어트를 하고, 팔뚝이나 허벅지 같은 자신의 신체 부위를 ‘저주 받았다’고 미워한다. 하나 진짜 문제는 옷이다. 허리 양쪽으로 비어져 나온 살 때문에 ‘러브핸들’이 잡히고, 조금만 숙이면 속옷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꼴불견도 사실은 청바지의 문제다. ‘여자가 칠칠치 못한’ 게 아니라 청바지 브랜드가 그동안 여자의 몸을 너무 몰랐던 거다. 허리 사이즈가 같아도 체형은 다 다르다. 당연히 청바지를 입은 모양새도 다를 수밖에. 누구는 만날 허리가 뜨고, 누구는 엉덩이가 꼭 끼어 번번이 바지를 잡아먹는다.

지난달 2일, 영국 런던의 한 호텔에서는 ‘허리 사이즈만이 아니라 몸매의 굴곡(커브)에 따라 골라 입는다’는 컨셉트의 ‘커브 ID’ 청바지가 처음 소개됐다. 프레젠테이션을 맡은 리바이스 여성사업부 유 응우옌 수석 부사장은 “세계 여성들의 몸매를 분석하니 크게 세 가지 타입으로 유형화됐다”고 밝혔다. 허리와 골반의 굴곡이 완만한 슬라이트 타입, ‘S 라인’에 가까운 볼드 타입, 중간 성격의 데미 타입이 그것. 유럽 현지에서 허리 사이즈가 같으면서 체형이 다른 여성 세 명을 수소문한 결과, 스웨덴 언더그라운드 가수 리키 리가 슬라이트, 독일 출신 관능적인 톱 모델 겸 DJ인 미스 나인이 볼드, 영국 유명 모델 피치스 겔도프의 동생이자 가수인 픽시가 데미 타입을 대표하는 모델로 선정됐다. 이들의 허리 사이즈는 모두 27. 이날 오후, 시내 중심가의 한 클럽에는 알렉사 청을 비롯한 유럽의 패셔니스타들이 총출동해 론칭 파티를 즐겼다. 세 모델이 직접 디제잉과 노래 솜씨를 선보이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탤런트 이지아, 모델 최여진, 가수 손담비가 각각 슬라이트, 볼드, 데미 타입 모델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의 허리 사이즈 역시 26으로 동일하다. 허리 사이즈가 같은 세 가지 타입 청바지를 비교하면, 사용한 천의 양도, 뒷주머니의 위치도 모두 다르다. 유 부사장은 “서로 다른 타입이라도 입었을 때 동일한 위치에 주머니가 달리도록 각도까지 계산해 패턴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리바이스가 여성 라인에 이토록 공을 들이는 건 여성이 주도하는 청바지 시장에서 뒤처지고 있기 때문이다. 160년 전 청바지를 처음 발명한 것도, 75년 전 여성용 청바지를 시장에 내놓은 것도 리바이스지만, 워낙 ‘클래식’ ‘마초’ 이미지가 강해 여성라인에선 고전을 면치 못했다. 도회적인 이미지의 ‘캘빈 클라인’과 섹시한 이미지의 ‘게스’ 등 거대 경쟁자들과 수많은 프리미엄 청바지에 밀려 ‘데님 명가’의 체면을 구겼다. 브랜드 내 고객 비율도 남성이 7, 여성이 3으로 큰 차이가 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세계 여성들의 몸매를 6만 번 스캔해서라도 판도를 바꾸고 싶었던 거다. 그러면서도 리바이스 특유의 ‘노동자’ 정서를 놓치지 않기 위해 섹시한 전문모델이 아니라 각자의 영역에서 성취를 이룬 ‘강한 여성들’을 모델로 선정했다는 설명이다. ‘대중’이라는 기반을 놓치지 않으려고 가격대도 10만원대 초반으로 설정했다. 차에 비유하자면 “페라리가 아니라 미니쿠페” 급이란다.

커브 측정 방법은 이렇다. 양 발을 붙이고 선 상태에서 정면을 바라보고 상체를 좌우로 구부렸을 때 잘록하게 들어가는 부분, 또는 양손을 어깨에 얹고 팔꿈치가 옆으로 벌어지지 않도록 가슴 옆에 모은 상태에서 양 팔꿈치 아래 부분과 맞닿는 부분이 허리다. 허리에서 골반, 골반에서 엉덩이로 이어지는 선의 굴곡을 커브라고 부른다. 이 커브를 알면 전 세계 어디에서도 동일하게 몸에 꼭 맞는 청바지를 사 입을 수 있다는 뜻에서 ‘커브ID’란 이름을 붙였다. 실제로 서울 명동의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특수 줄자로 잰 나의 커브ID는 영국 런던의 리젠트 스트리트에서 측정한 것과 동일했다. 리바이스는 전국 매장 110여 곳에 전문 교육을 받은 ‘핏 마스터’를 파견하고, 인터넷 홈페이지(www.levi.co.kr)에도 ‘디지털 피팅룸’을 마련했다. 유방암 캠페인 기간인 이번 달엔 핑크 큐빅을 박아 넣은 한정판을 내놓으며 ‘여심’에 호소하는 중이다. 한때 가장 남성적인 것의 상징이었던 청바지가 가장 여성적인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는 셈이다.

  런던=이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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