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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쳐나는 '외화 곳간' 한은 "어떡하나" 시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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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지난달 2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의 월스트리트. 외환시장 개장과 동시에 달러가 엔과 유로 등 주요 통화에 대해 곤두박질했다. 한국은행이 "외환 보유액 투자대상 통화를 다변화하겠다"고 밝힌 내용의 외신이 시장을 강타해 달러화 폭락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시장은 한은이 달러 팔자에 나설 수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한은이 세계 금융시장의 '큰손'으로 등장한 셈이다.

2월 15일 현재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2002억4900만달러로 세계 4위다.

1997년 외환위기 직후 39억달러로 줄어든 곳간(외환보유액)을 채우기 위해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던 것과 비교하면 천양지차다.

하지만 곳간이 두둑해졌어도 정부와 한은의 고민은 깊어만 가고 있다. 수출 호조와 증시 활황으로 달러화가 국내 금융시장에 끊임없이 유입되고, 미국의 쌍둥이(무역.재정) 적자에 따라 달러화 약세 기조가 굳어지면서 환율 방어는 밑빠진 독에 물붓기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환율 하락에 따른 수출 경쟁력 약화를 막기 위해 달러화를 사들이는 것도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한은의 통안채 발행과 정부의 외환시장안정용 국고채(환시채) 발행으로 채권값이 하락(금리는 상승)하면서 시중 실세금리는 올 들어 1%포인트 가깝게 치솟았다. 환율 하락을 막자니 금리가 오르고, 금리 안정에 무게를 두자니 넘치는 외환의 관리와 비용 때문에 골머리를 앓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지난달 21일 한은은 국회업무보고 자료에서 달러화 보유를 줄이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외환보유액 다변화 방침을 공개했다. 이는 국제 외환시장에서 되레 달러화 폭락을 부추기며 '한은발 외환시장 쇼크'를 불러 왔다.

◆ 무엇이 문제인가=넘치는 외환보유액이 외환시장을 안정시키기보다는 불안을 자극하면서 부작용에 대한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최근 국내 외환보유액이 적정수준을 초과해 하루 74억~236억원의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적정 외환보유액이 1250억달러인데도 지난해 말 현재 1991억달러를 보유하는 바람에 지난해에만 최소 2조7000억원, 최대 8조6000억원의 보유 비용이 추가됐다는 것이다.

연구원은 지난해 연평균 580억달러를 과다 보유하는 바람에 국내 민간투자수익률(연 6%)과 미국 국채금리(연 4.5%)의 차이에 해당하는 23억7800만달러(2조7000억원)의 손실이 생겼다고 분석했다. 과다보유액을 지난해 말 기준(741억달러)으로 계산하고 연간 환율 하락폭(15%)을 적용할 경우 이 금액은 83억4000만달러(8조6000억원)까지 급증한다.

여기에 연 5조원대에 이르는 통안채 이자와 환시채의 이자 비용까지 합하면 외환 보유비용은 연 10조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관계자는 "국내외 금리격차가 1%포인트 확대될 때마다 현재 수준의 외환 유지비용은 20억달러씩 증가한다"며 국내외 금리격차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그러나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환율 하락을 방치해뒀다면 올해 세수가 3조8000억원가량 줄어들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면서 "환율 방어를 안 했을 때 봤을 피해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 어떻게 해야 하나=결국 늘어나는 외환을 효율적으로 운용하는 게 시급해졌다. 민주당 김효석 의원은 "한은은 국민연금보다 많은 돈을 운용하므로 이제는 수익성 등 운용성과를 평가하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박대근 교수는 "비상상황에 대비한 900억~1400억달러를 뺀 나머지는 외환보유액이 아닌 '외화 자산'으로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운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은이 운용하는 통화는 달러가 65~80%으로 추정되며, 달러는 대부분이 미국 국채 중심인데 앞으로 수익성이 높은 미국의 주택저당채권(MBS)이나 자산유동화증권(ABS) 투자 비중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김동호.나현철.김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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