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금 키맨’은 이호진 회장 외가 친척 … 검찰 “수사 빈칸 메울 핵심 루트 찾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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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광그룹의 비자금 관리에 관여하고, 관련 장부를 보관해온 것으로 알려진 이모(63)씨가 대표로 있는 부산광역시 가야동의 모 골프연습센터. [송봉근 기자]

태광그룹 비자금 의혹 수사가 본궤도로 접어들고 있다.

 정·관계 수사의 출발점이 될 수 있는 태광그룹 오너 일가의 최측근 중 한 명인 이모(63)씨가 18일 검찰에 소환되면서다. 이씨가 소환된 이날 서울서부지검 소속 수사팀은 급박하게 움직였다. 이날 오후 1시로 예정됐던 서울인베스트 박윤배 대표에 대한 조사도 미뤄졌다. 이번 사건을 최초로 폭로한 박 대표는 검찰청사까지 갔다가 발길을 돌려야 했다.

 검찰은 이씨에 대한 조사가 태광그룹 비자금 수사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분위기다. 태광그룹 오너 일가의 가신과 같은 역할을 하면서 비자금을 관리했기 때문에 그가 검찰이 확보한 각종 증거 자료를 ‘꿰어줄’ 수 있는 고리가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검찰 내부에서는 이씨의 주거지를 압수수색하면서 “비자금의 루트를 찾았다”는 말도 나왔다.

검찰 관계자는 “태광그룹 비자금 수사는 ‘괄호 채우기’ 수사였다. 박윤배 대표의 제보 등으로 전반적인 그림을 그릴 증거 자료는 충분히 확보했고, 중간중간에 빈 공백이 있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 빈 공간을 채울 수 있는 해답이 이씨에게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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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회장의 외가 쪽 친척인 이씨는 그간의 활동이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그룹 오너 일가의 신뢰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에서 그룹 최고위층 보직을 맡지 않았다. 태광산업 부산 공장과 고려상호저축은행 등의 감사, 골프연습센터의 센터장이 경력의 전부다.

하지만 검찰은 이씨가 비자금의 핵심 인물이라는 첩보를 입수하고 그의 사무실과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오너 일가의 자택을 압수수색하면서 동시에 베일에 싸여 있는 이씨를 친 것이다. 이씨에 대한 조사 결과는 이호진 회장 등 오너 일가를 압박하는 카드가 될 것으로 보인다.

태광그룹 비자금 의혹을 제기한 박윤배 서울인베스트 대표가 18일 오후 서울서부지검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경빈 기자]

 ◆박윤배 대표와 태광그룹 진실 공방=태광그룹 측은 이날 “지난 8월 초 박 대표가 27억여원을 요구했다. 자문계약 기간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자신을 해고한 데 따른 미지급 자문료에 이자까지 합친 금액이었다”고 주장했다. 검찰 수사에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던 태광그룹이 이례적으로 박 대표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한 것이다. 태광 측은 “박 대표에게 13억여원의 자문료를 지급했기 때문에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자 9월 초 박 대표가 ‘검찰에 고발하겠다’며 내용증명을 보냈고 ‘27일까지 답하지 않으면 검찰에 가겠다’고 했다”고 주장했다. 박 대표가 태광그룹의 비리를 폭로하지 않는 대가로 금품을 요구했다는 취지다. 박 대표는 태광그룹의 노사관계 및 구조조정 컨설팅 자문위원으로 일했다. 이호진 회장도 자신을 둘러싼 의혹과 관련해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반면 박 대표는 “태광그룹 측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내용증명을 보낸 것은 사실이나 돈을 요구한 적은 없다”고 부인했다. 박 대표는 “2002~2004년 2년여간 자문위원을 했고, 그에 대한 자문료는 계약(1년 5억원)에 따라 받은 것은 맞지만 그 이외의 금품 관련 얘기는 낭설”이라고 반박했다. 

글=정선언·김효은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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