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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기획취재] 습지 말라 도롱뇽 다 죽는다던 천성산 가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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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8일 찾은 천성산 정상 화엄늪에는 억새 사이로 곳곳에 물웅덩이가 있었다. 화엄늪 관리원 이용화(가운데)씨 뒤와 아래쪽에 물웅덩이가 보인다. [신인섭 기자]


검은색을 띤 천성산(해발 922m) 밀밭늪의 바닥은 물컹거렸다. 해발 700m 높이에 있었지만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흙에선 물이 배어 나왔다. 8일 오전 10시 찾은 밀밭늪은 곳곳에 억새가 자라 있었다. 허리를 숙여가며 억새 사이의 습지 구석구석을 살폈다. 물이 5㎝ 정도 깊이로 고인 곳에서 손톱보다 작은 주걱 모양의 꽃 같은 것이 보였다. 동행한 생태전문가 강상준(70) 충북대 명예교수가 습지에서만 자라는 ‘끈끈이주걱’이라고 했다. 습지식물인 ‘삿갓사초’, 습지와 건조한 땅 중간단계에서 사는 식물인 ‘진퍼리새’등이 눈에 들어왔다.

 밀밭늪은 11월 1일 개통 예정인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구간 원효터널 바로 위쪽에 있었다.

원효터널은 천성산 내원사 지율 스님과 환경단체가 터널 공사를 하면 위쪽 늪이 말라 생태계가 파괴된다며 도롱뇽을 원고로 공사착공 금지 소송을 냈던 곳이다. 이 소송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공사는 6개월간 중단됐다.

<중앙sunday 10월 17~18일 1, 6, 7면, sunday.joongang.co.kr 참조>

 강 교수는 “만약 물이 없으면 끈끈이주걱 같은 식물은 절대 살 수가 없다. 습지가 유지되고 있다는 증거”라며 “2004년이나 2008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달라진 게 없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2004년 가을부터 2008년 가을까지 11차례 천성산의 밀밭늪과 법수원 계곡에 왔다. 한국철도시설공단의 의뢰를 받아 경부고속철도 대구~부산 구간 공사를 위해 천성산에 터널을 뚫을 경우 천성산 습지에 어떤 환경 변화가 생기는지 조사하는 팀의 총책임자였다. ‘졸졸졸’ 소리를 내며 물이 흐르는 도랑이 나타났다. 그곳에서 가재와 개구리를 볼 수 있었다. 환경조사에 양서·파충류 책임자로 참가한 한국양서·파충류생태연구소 심재한(49) 소장에게 현장에서 찍은 가재 사진을 보여줬다. 그는 “이 가재는 1~2년 된 가재다. 이런 가재가 있다는 것은 여기에 항상 물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가재가 번식을 하고 있는 거다. 가재는 물 없이는 절대 살 수 없다”며 “매년(2004~2008년) 조사하러 갈 때마다 도롱뇽을 발견했다. 특히 봄에는 도롱뇽 알도 볼 수 있었다. 지금 정도면 산은 겨울이라 도롱뇽은 벌써 겨울잠 자러 들어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심 소장은 “곤충이나 양서·파충류는 진동에 아주 민감해서 다음 달 KTX개통 이후 다시 확인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강 교수가 건조한 땅에서 자라는 억새가 많은 이유를 설명했다. “밀밭늪에 억새가 이렇게 많이 있다는 것은 이곳이 점점 건조해지고 있다는 증거다. 건조화는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진행 중이다. 처음 여기 왔던 2004년에도 진행 중이었다.”

 밀밭늪에서 3.1㎞ 떨어진 화엄늪, 이곳 역시 터널 공사 이전과 달라진 것이 없다고 했다. 2006년부터 화엄늪을 관리해온 이용화(58)씨는 “4년간 매일 이곳에 오다시피 하는데 달라진 건 저기 보이는 나무가 자란 것뿐이다. 올봄에도 웅덩이마다 도롱뇽이랑 알들 천지였다”고 말했다. 산 기슭 마을인 주남동 주민 이정원(71)씨는 “우리 동네는 천성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식수와 생활용수로 사용하는데 물이 안 나오면 주민들이 벌써 난리가 났을 것”이라며 “그래도 돌을 뚫었는데 앞으로는 어떨지 모르지”라고 했다.

 지율 스님 입장을 들어보기 위해 그가 머물고 있다는 경북 상주로 달려갔다. 지율 스님은 공사 중단을 요구하며 2003년부터 2005년 사이 네 차례에 걸쳐 241일간 단식을 했다. 서울에 있다는 그와 통화가 이뤄졌다. “천성산에 다녀왔는데 늪에 물이 많고 변화가 없다”고 하자 그는 “천성산 문제는 단발적으로 얘기하기 힘들다. 터널이 개통되면 제가 할 일이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양산=임현욱 기자
사진=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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