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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여행 10 │ 단풍열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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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놀이는 기차여행이 안성맞춤이다. 기차만 타고 돌아다녀도 산 속 깊은 곳에 숨어있는 단풍을 만끽할 수 있다. 지난해 11월 19일 강원도 삼척 신기역 근방에서.

이달에도 기차를 탄다. 10월에 몸을 싣는 기차는 전국의 단풍 명소를 향해 달린다. 이달 기차여행 주제는 단풍열차다. 가을이 왔는데, 단풍을 빼놓고 여행을 다닐 수 없어서다. 조목조목 따져 보니 단풍여행은 기차여행이 제격이다. 그 이유를 설명한다.

손민호 기자

# 단풍놀이 계산법

기상청이 발표하는 테마 예보 중에 벚꽃 예보와 단풍 예보가 있다. 벚꽃 예보 옆에 개나리나 진달래 예보가 종종 끼어들곤 하지만, 지역별 벚꽃 개화 시기는 봄이 오시는 소식을 대표한다. 단풍도 마찬가지다. 북쪽에서부터 전해 내려오는 단풍 소식은, 차례대로 내려앉는 가을을 우리에게 일러준다. 하여 벚꽃과 단풍은 각각 봄과 가을의 동의어다.

단풍 구경을 놀이 수준으로 즐기려면 약간의 계산이 필요하다. 단풍놀이도 꽃놀이처럼 타이밍이 중요해서다. 제 아무리 고운 꽃이어도 열흘 이상 못 피는 것처럼, 제 아무리 산이 높아도 보름 이상 붉은 산은 없다.

기상청은 지난 5일 설악산에 첫 단풍이 관측됐다고 발표했다. 첫 단풍이라는 단어는, 단풍이 산 전체의 20%를 덮었을 때 적용되는 기상용어다. 설악산 정상 대청봉의 높이가 해발 1707m다. 그러니까 설악산에 5일 첫 단풍이 들었다는 건, 적어도 해발 1300m 이상 올라가야 단풍을 구경할 수 있다는 얘기다. 단풍은 추운 곳에서 따뜻한 곳으로, 즉 북에서 남으로, 높은 데서 낮은 데로 번져 나간다.

기상청은 이어 올 설악산 단풍 절정기를 21일로 예상했다. 단풍 절정기는, 단풍이 산 전체의 80% 이상 차지할 때 쓰이는 표현이다. 첫 단풍이 5일 관측됐으니 17일 만에 설악산 단풍은 해발 340m까지 내려온다는 얘기다. 설악동 입구에 있는 설악산 국립공원 관리사무소가 해발 300m대에 있다. 이 정도는 돼야 산 전체가 타오르는 듯 붉게 물들어 보이고, 이 정도는 돼야 단풍 구경이 고된 산행이 아니라 콧노래 흥얼대는 놀이가 된다.

설악산 단풍 예보에서 단풍의 속도가 계산된다. 설악산 단풍은 하루에 60m씩 하산한다. 기온이 떨어질수록, 일교차가 클수록 단풍 속도는 빨라진다.

# 단풍놀이와 기차여행

단풍 물든 강원도 정선의 깊은 산골을 헤집고 다니는 열차. 지난해 10월 23일 촬영. [코레일관광개발 제공]

국내 여행 판도를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흐름이 읽힌다. 한국인이 여행을 많이 떠나는 계절은 휴가가 집중된 한여름이지만, 국내 여행사에 한여름은 외려 가장 한가한 시즌이다. 여름 바캉스 대부분이 개별 여행이어서다. 대신 국내 여행사에 성수기는 봄과 가을이다. 봄에는 꽃을 팔고, 가을엔 단풍을 판다.

여기에도 이유가 있다. 꽃놀이든, 단풍놀이든 산행이 여정의 대부분을 차지해서다. 여행사 상품의 장점은 손수 운전하는 수고를 피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이 장점이 산행 여행에서 확 두드러진다. 국내 산행 대부분이 고개를 넘는 것이어서 개별 여행은 원점 회귀 코스가 아닌 이상 왕복 산행을 감내해야 한다. 이때 여행사 상품이 절대 유리하다. 고개 이쪽에 손님을 내려놓고 손님이 산행을 하는 동안 고개를 넘어 기다리고 있어서다. 개별 여행일 경우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은 이상 고개 이쪽에 세워둔 차를 고개 저편에서 수거할 방법이 없다. 여행사 상품은 개별 산행보다 안전하다는 장점도 있다. 단체로 움직이고, 가이드가 동반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여행사 상품은 단풍 예보에 가장 민감하다. 한철 장사여서다. 단풍 절정기를 정확히 계산해 차량을 배차하지 않으면 한 해 단풍 장사를 망치기 일쑤다. 다시 말해 기상이변이 없는 이상, 여행사 상품은 가장 안전하고 편리하게 단풍놀이를 즐길 수 있는 선택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전국의 단풍 명소마다 단풍 절정기가 돌아오면 호된 교통 정체를 앓는다. 단풍 명소 대부분이 깊은 산속에 들어 있어 평소엔 왕복 4차선 도로가 쓸데없이 넓어 보이지만, 단풍 절정기에 들면 넓다는 생각이 싹 가신다. 산 진입로만 막히는 게 아니라 산으로 향하는 고속도로부터 막힌다. 대표적인 경우가 영동고속도로다. 10월 중순마다 영동고속도로 북수원∼원주 구간은 여름 휴가철 못지않은 정체에 시달린다. 올해는 설악산을 향하는 가장 빠른 길인 춘천고속도로가 걱정이다.

# 내장산 공략법

하나 최악의 사례는 따로 있다. 내장산이다. 내장산을 향하는 호남고속도로는 해마다 11월만 되면 끔찍한 계절병을 앓는다. 특히 내장산 진출로인 정읍 IC와 내장산 IC 주변의 정체가 심하다. 정확히 짚을 수도 있다. 정읍 IC 이전 10㎞부터, 아기단풍으로 유명한 백양사로 나가는 내장산 IC까지 25㎞ 구간이다.

내장산이 유독 심하게 계절병을 앓는 이유는, 내장산 단풍이 유달리 고운 이유도 있지만 굳이 고된 산행을 감수하지 않아도 단풍놀이를 만끽할 수 있어서다. 국립공원 관리공단이 해마다 전국 국립공원의 단풍 명소를 소개하는데, 내장산만 유일하게 공원 입구 지역이 두 곳이나 포함돼 있다. 내장산 주차장에서 내장사까지 3㎞ 구간과 백양사 주차장에서 백양사까지 2.3㎞ 구간이다. 이 두 구간 모두 사찰 진입로여서 길이 평탄하다. 어르신은 물론이고 유모차 탄 아이도 단풍놀이가 가능하다. 나무 수령이 오래돼, 백양사 진입로는 단풍 절정기에 거대한 단풍 터널을 연출한다. 하여 내장산은 산행 초보에게도 부담이 없다. 그래서 여행사가 내장산에 매달린다. 내장산 진입로가 특별히 막히는 속사정이 예 있다. 여행사 대형버스가 줄줄이 대기하고 있어서다.

이 계절병에 대한 효과적인 대안이 기차여행이다. 강원도 단풍여행을 계획한다면 최소한 원주까지 기차를 이용한 다음 원주에서 여행사 버스를 갈아타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내장산의 경우엔 정읍까지 기차를 타고 간 다음, 정읍역에서 내장산 입구까지 운행하는 셔틀버스를 갈아타면 된다. 내장산 셔틀버스는 지역 여행사가 운영하고 있어 타 지역 관광버스보다 혜택이 많다. 길이 막히면 셔틀버스부터 먼저 통과시키고, 주차장도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쪽을 이용한다.

# 기차여행 상품

코레일 자회사 코레일관광개발(www.korailtravel.com)이 올 단풍 시즌에 맞춰 내놓은 상품은 모두 18개다. 그중에서 가장 중점을 둔 건 역시 내장산이다. 이달 16일부터 다음 달 21일까지 KTX를 이용해 매일 출발한다. 내장사 쪽으로 들어갔다가 나오는 당일 여정과 백양사 쪽으로 들어갔다 나오는 당일 여정이 주력 상품이다. 두 상품 모두 5만4000원(주말 6만4000원). 내장산 1박2일 상품도 있다. 역시 KTX를 이용하며 내장산 단풍놀이와 섬진강 레일바이크, 강천산 단풍 산행을 결합했다. 15만3000원(주중 2인1실 기준). 설악산 단풍놀이는 10월 주말마다 출발하는 주전골 단풍 산행을 추천한다. 기차편으로 원주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설악산을 갔다가 다시 원주에서 기차를 탄다. 당일 여정 4만9000원. 무박2일로 주전골을 다녀올 수도 있다. 오전에 바다열차를 체험하고 오후에 주전골을 오른다. 22, 29일 출발. 8만9000원. 1544-7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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