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부4처2청 이전 합의 뒤 남은 과제] 어렵사리 '흥정' … 아직도 먼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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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가 충남 연기.공주 일대에 행정도시를 만들기 위해 이전키로 23일 합의한 12부4처2청을 살펴보면 일관된 기준이나 원칙이 없다. 정치적 흥정으로 선정한 흔적이 역력하다. 국가 중추기관의 이전 범위를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늘렸다 줄였다 했다는 것이다.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당초 이전대상 범위를 16부4처3청으로 잡았었다. 정부 측의 신행정수도후속대책위원회는 원래 청와대.통일부.외교통상부.국방부만 제외한 행정중심도시안(15부 4처 3청)을 유력한 대안으로 검토했다. 하지만 열린우리당은 이를 수용하면서 통일부까지 이전 대상에 포함해 위헌 결정 이전에 추진했던 신행정수도안에 가장 가까운 16부4처3청안을 밀어붙이려 했다.

이번에 여야가 합의한 12부4처2청안은 18부에서 통일부.외교통상부.국방부 외에 법무부.행정자치부.여성부를 새로 이전 대상에서 제외시키고 3청(국세청.소방방재청.경찰청) 가운데 경찰청을 잔류시킨 것이다. 법무부 등 이전 대상에 새로 제외된 3개 부처는 전국적 통할 기능이나 행정의 중추 기능에 해당된다는 게 정치권의 설명이다. 그러나 정부 관계자들은 "여성부가 왜 이전 대상에서 제외됐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행정도시 구상이 입법.행정.사법부 전체→청와대 및 18부4처3청→16부(15부)4처3청→12부4처2청으로 변해온 것 자체가 국정 운영의 효율이나 지역 균형 발전을 고려한 것이라기보다 충청권의 표밭을 의식한 결과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이 교육.과학기술.산업자원.정통 부를 포함한 7부 17개 기관을 이전하는 다기능 복합도시안을 고수하다 재경부 등 다른 부처의 추가 이전에 동의한 부분 역시 이유가 분명하지 않다.

◆ 후속조치 잇따를 듯=정부는 행정도시 특별법이 통과되면 다음달 초 수도권 공공기관 이전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아울러 행정기관과 공공기관 이전으로 공백이 생길 수도권에 대한 발전 방안을 내놓고 민심 수습에 나선다. 낙후지역 개발, 지방분권 등 국가균형발전 시책도 병행 추진된다.

정부는 이전.잔류 기준을 마련하고, 수도권 소재 268개 공공기관 가운데 190여개 기관을 수도권과 대전을 제외한 12개 시.도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비슷한 분야의 연관성이 강한 기관끼리 묶어 20개 안팎의 그룹으로 만들어 집단 이전하는 방식이다. 이전되는 공공기관 1~2개 그룹을 중심으로 수도권과 대전.충남을 제외한 11개 시.도에는 혁신도시를 세울 계획이다. 실제 이전 시점은 개별적으로 이전하면 2007년, 혁신도시를 만들어 들어가는 경우에는 대략 2012년이다. 정부는 그러나 선도기관을 정해 이보다 2년 정도 이른 2010년께 첫 혁신도시를 세워 이전토록 할 계획이다.

정부는 공공기관 이전을 촉진하기 위해 특목고와 자립형 사립고 설치, 특정학교에 대한 전.입학 특례 허용 등 양질의 교육여건을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배우자 직장 알선, 퇴직시 실업급여 지급 등 다양한 인센티브도 제공하기로 했다. 수도권 본사를 모두 옮길 수 없는 공공기관은 서울지사 설치를 허용하기로 했다.

수도권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1중심(서울) 및 2거점(인천.수원)과 '4대 특성화 벨트' 등의 다핵 구조로 전환한다는 구상이다. 서울은 금융.국제비즈니스의 허브, 인천은 물류 중심, 경기도는 첨단산업의 메카로 발전시킨다는 것이 골자다. 수도권 집중을 막기 위한 각종 규제는 선별적.단계적으로 푼다는 게 정부의 구상이다.

◆ 이전 대상 청사는 어떻게=이전 대상 정부청사는 매각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과천청사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정보벤처단지 조성 등 경제적 용도로 활용하자는 의견도 많아 ▶연구개발센터(과천시 희망)▶정보벤처단지▶수도권 관할 정부 소속기관 집단 이전 등이 고려되고 있다. 이 밖에 ▶외국계 기업과 대기업 본사 등을 유치하는 대규모 업무단지▶다기능 복합단지(업무용+상업용+레저시설+일부 주거용 시설)▶역세권 고층아파트와 고급 주거단지 등 여러 대안이 검토되고 있다.

지방으로 이전하는 공공기관의 부동산도 매각된다. 이전 여부가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현재 도로공사.토지공사.농업기반공사.경찰대학.국방대학교 등이 대규모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다. 정부는 지방 이전 공공기관이 수도권 부동산을 고가에 팔 수 있도록 용도를 바꿔줄 방침이다. 또 이전 부지에는 연구기관.대학이 입주할 수 있도록 수도권 입지 규제를 완화해 주기로 했다.

허귀식 기자

*** 행정도시 특별법안 요지

특별법안의 명칭은 '신행정수도 후속 대책을 위한 연기.공주 지역 행정중심 복합도시 건설을 위한 특별법'으로 한다. 연기.공주 지역에 행정기능을 이전하는 자족형의 친환경.인간중심.문화정보도시를 건설한다. 공공건물의 건축과 행정도시 광역교통시설의 건설을 위해 국가예산에서 지출하는 금액의 상한선을 8조5000억원으로 한다.

대통령 소속으로 총리와 민간인을 공동위원장으로 하는 30명 이내의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그 실무조직으로 추진단을 둔다. 이전 부처는 12부4처2청으로 한다. 정부 부처 가운데 재정경제.교육.문화관광.과학기술.농림.산업자원.정보통신.보건복지.환경.노동.건교.해양수산부 12부와 기획예산처.국가보훈처.국정홍보처.법제처 등 4처를 연기.공주지역으로 이전한다.

청와대를 비롯해 국회.대법원과 정부 부처 가운데 통일.외교.국방.법무.행정자치.여성부 등 6부는 서울에 남는다. 효율적인 사업 추진을 위해 차관급을 청장으로 하는 건설청을 설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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