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발 뺀 북한 … 핵 실타래 풀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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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자회담에 대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21일 메시지는 한마디로 '조건이 성숙하면 회담테이블에 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언뜻 보면 10일 외무성 성명이나 "회담 참가 명분을 달라"는 17일 한성렬 유엔 주재 북한대사의 언급과 궤를 같이한다.

그러나 주목되는 변화가 있다.

외무성 성명이 회담 중단 의사 표명이라면 김 위원장의 언급은 조건부 참가 쪽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갔다. 북한이 핵무기 보유 선언의 충격에 묻혀버린 속심을 점차 드러내는 것이다. 관련국들의 차분한 대응에 따른 효과란 분석도 가능하다.

김 위원장이 "미국이 믿을 만한 성의를 보이고 행동하기를 기대한다"고 언급한 것도 눈여겨봐야 한다. 미국의 대북 강경책에 대한 험담 대신 처음으로 '기대'란 표현을 썼기 때문이다. 부시 행정부에 대한 희망을 접지 않은 김 위원장의 현실적 인식이 함축된 단어다.

김 위원장은 북한이 먼저 움직일 생각은 없다는 입장도 분명히 했다. 그는 조건부 참가 카드로 미국과 한국.일본.중국.러시아에 공을 넘겼다. "(북한은) 모든 노력을 다했다"며 과거형 표현을 쓴 대목에서 이런 뜻은 보다 명료하게 드러난다. 김 위원장이 언급한 '조건'이 무엇인지를 읽어내는 게 회담 재개 노력의 핵심이 될 수 있다.

북한 중앙통신은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구두 친서에서 북한의 체제보장 걱정을 "합리적인 우려"라고 말한 점을 강조했다. 북.중 혈맹관계를 부각해 중국의 역할을 치켜세워주는 한편 미국을 압박하려는 의도가 감지되는 대목이다.

22일 아침 노동신문은 1면 톱기사로 면담 사실을 상세히 다루면서도 핵무기 보유 선언 관련 대목은 피해갔다. 면담에서 만찬까지 이어진 장시간의 만남에서 김 위원장이 꺼낸 내밀한 발언은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중국 측의 관련국 협의과정에서 파악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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