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 짚풀문화제 ‘관례’ 재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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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전 11시 아산 짚풀문화제 프로그램으로 전통 관례가 아산 외암민속마을 교수댁에서 재연됐다. 관례를 주관하는 집례(왼쪽)가 주인공 김병목씨에게 손님 대신 축사를 읽어주고 있다. [아산문화재단 제공]

‘인화(寅和, 삼가 공경하며 화합에 힘쓰라)’

이 두 글자는 김병목(25·성균관대 유학동양학부 4년)씨가 10일 전통성년식인 관례(冠禮)를 치루면서 받은 자(字)다. 자는 이름과 별도로 짓는 호칭으로 자유롭게 짓는 호(號)와 달리 실천덕목을 담는다. 옛 유생들이 어른이 됨을 뜻하는 관례를 거치면서 얻게되는 새로운 칭호다.

김씨 관례는 아산 외암민속마을의 교수댁에서 거행됐다. 교수댁은 예전 이 집 주인이 조선시대 최고교육기관인 성균관의 교수(교관)직을 지내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짚풀문화제’행사로 준비된 관례는 사람이 태어나 지켜야 할 예법 4가지 즉 ‘관(冠)·혼(婚)·상(喪)·제(祭)’ 중 처음 거치는 의식이다. 이제 어른이 됨을 알리는 순간으로 관혼상제 중 가장 중요시했다. 어린 시절부터 땋아 내렸던 머리를 상투로 틀어올리고 그 위에 관(冠)을 쓴다. 여자의 경우 머리를 올려 쪽을 지고 비녀를 꽂는다(계례).

관례 재연을 고증한 한학자 경화 임용순(79)씨는 “당초 예전에는 20살이 되면 행하던 의식이었으나 지금은 공부하느라 직장 구하느라 바빠 결혼 전에나 행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날 교수댁 넓은 마당에는 자녀들을 데리고 참관하러 온 부모들이 많았다. 자녀들에게 어른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일깨우는 관례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 의식은 현대인에게 생소했다. 정강산(16·천안불당중 3년)군은“절차가 복잡하고 까다뤄워 옛날 이 의식을 치루던 사람들은 정말 힘들었겠다”고 말했다.

의식은 세번에 걸쳐 1시간 동안 진행됐다(三加禮). 이날 주인공 김씨는 평상복·외출복·관복을 차례로 갈아 입었고 갓·관모 등 의복에 맞는 관을 썼다. 이날 관례 집전은 임씨의 제자들이 행했다. 전체 행사를 이끄는 집례(執禮)는 천안청수고 권선길 교사, 사회는 두정고 조창렬 교사가 맡았다. 특히 외암마을 참판댁 종손 이득선(69)씨가 관례의 ‘중요한’ 역할인 손님(賓)을 맡았다. 주인공의 부친은 관례의 격을 높이기 위해 학식이 높은 선비를 초청한다. 손님이 축사를 했다. “길한 달, 좋은 날에 처음으로 관복을 입혀주니 이제 어린 생각을 버리고 덕을 닦아 큰 복을 누려라.”

짚풀문화제의 관례 재연은 이번이 처음이다. 외암민속마을보존회 이준봉 회장은 “올해 문화제는 연예인 초청 등 대형 외부 행사를 없애고, 관람객에게 전통문화의 실상을 보여주는 등 축제 내실을 기했다”며 “그 일환으로 올해부터 혼례·상례(상여행렬),불천위제사 재연과 함께 관례를 추가했다”고 말했다. 행사를 주최한 한국차문화협회 아산지부 호한정다례원 김태임 원장은 “요즘 청소년은 몸만 커지고 행동과 생각은 성숙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성인다운 행실을 보일 때 정말 어른이 되는 걸 강조하기 위해 관례를 열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 6일부터 닷새동안 열린 제11회 외암민속마을 짚풀문화제는 올해 많이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체험 행사 및 공연들이 외형보다 내용에 충실했다는 평이다. 이 회장은 “9일 세계문화유산 등록 업무를 관장하는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간부가 축제를 둘러보고 ‘우리 전래 문화를 차분하게 알려주는 진정한 전통축제’라고 칭찬했다”고 전했다.

조한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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