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국민 공조'로 핵 위기 돌파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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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핵무기 보유 선언과 6자회담 참가 중단 성명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취임사와 연두교서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북한의 반응은 있을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던 터라 성명 발표시기 자체는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이 이 두 연설에서 직접적인 북한 비난을 자제했다는 측면에서 북한의 긍정적 화답을 기대했던 사람들에게 이 성명의 내용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그간 미국은 북한의 핵무기 보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대북 강경전략을 구상해 온 반면 한.중은 회의적 입장에서 온건전략을 구상해 왔다. 그러나 이제 북한이 핵무기 보유를 공식 선언한 이상 앞으로의 대북 전략은 북한의 핵무기 보유에 무게를 뒀던 미국의 전략에 따라 전개될 가능성이 커졌다. 따라서 주변국들에 대한 미국의 온건대응 자제 요구가 더욱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미.북 간의 강경입장이 첨예하게 대치되면 한반도 정세는 긴장상태로 돌입할 수밖에 없다.

이 긴장상태를 해소하려면 어떻게 하든 6자회담이 조속히 재개되도록 하든지, 아니면 새 해결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 따라서 6자회담 재개를 주장하는 미국과 북.미 양자회담으로의 전환을 희망하는 북한 간에 힘겨루기가 전개될 것이다. 이 힘겨루기에서 북한은 '벼랑 끝 전술'로, 미국은 '선 채찍, 후 당근' 전술로 나올 것이 예상된다. 이 와중에서도 극적인 접점이 도출될 가능성을 완전 배제할 수 없지만 그보다 위기사태가 올 가능성이 크다.

북한의 강경 성명 빌미는 부시 대통령의 취임사와 연두교서에서 나왔다. 이 연설에서 부시는 직접적 북한 비난은 자제했지만 그 주제는 북한에 매우 위협적이었다. 이 연설에서 특별히 강조된 것은 자유와 민주주의의 확산이다. 이는 미국의 기존 대외정책과는 매우 다르다.

기존 정책은 그 나라 정권이 민주정권이든 폭압정권이든 미국에 우호적이면 함께 국제평화와 공동번영을 추구하는 것이었다면, 앞으로는 폭압정권이면 미국에 우호적 정권이라도 체제 교체의 대상으로 취급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폭압정권의 대표적인 정권이 바로 이란과 북한이라는 것이다.

미국 안보의 최대 위협인 테러도 이 폭압정권의 지원하에 자행되는 국제폭력이기 때문에 가장 효과적인 테러박멸책도 폭압정권의 제거라는 주장이다. 따라서 북한 입장에서 보면 6자회담도 북핵 문제 해결이 아니라 북한의 체제 교체를 위한 수단일 뿐이므로 이에 참여할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이를 단호히 거부하고 자위수단으로 핵무기를 보유하겠다는 것이다.

그간 한.중.일은 미국의 대북 강경정책 완화에 북한의 기대만큼 기여하지 못했다. 이런 측면에서 북한은 돌파구 마련을 위해 이들 3개국이 더 적극적으로 대미 압력 행사에 나서는 것이 필요했고 이를 이번에 요구한 것이다. 이러한 요구는 한국에는 그간 불안하게나마 균형을 유지해 온 민족과 동맹을 모두 살리려는 정책을 흔들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요구에 더 응하면 민족 공조가 깨지고 북한의 요구에 따르면 동맹위기라는 진퇴양난의 계곡 속이다. 그러나 이 계곡에서 나와야 한다. 이 계곡에서 나오려면 두 강경 국가를 주도적으로 설득하는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 우리는 새로이 국민 공조의 틀을 만들어야 한다. 이제 민족 공조니 동맹 강화니 하는 비생산적 싸움은 그만하고 이 위기를 함께 걱정하고 힘을 모으는 국민 공조를 이뤄야 한다. 이제 동맹강화파는 북한 비난에만 열을 올리지 말고 동맹인 미국 설득에 앞장서고 민족공조파는 미국 비난보다는 그간 소홀히 했던 동족인 북한 설득에 나서야 한다. 우리 내부에서 국민 공조가 잘 이뤄진다면 두 강경국도 접점을 찾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외환은 내부 단결로 극복될 수 있다.

민병석 전 유엔 평화유지단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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