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저작권 세미나, "법적규제? 시장이 따라와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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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CD를 한 장 샀는데, 같은 음악을 MP3플레이어로도 듣고 싶어서 유료 음악사이트를 뒤졌지만 이 음악을 찾을 수가 없었어요. 소비자 입장에서 적절한 상품이 공급될 때까지 그냥 기다려야 하는 것인지 의문스럽습니다."

▶ 16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저작권 세미나.

16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저작권법의 문제점과 개선방향'세미나. 지정토론자로 나선 육소영 교수(충남대 법학과)는 정당한 댓가를 치르려 해도 음원을 구입하기 힘든 상황에 불만을 드러냈다. 지난달 새 저작권법의 발효를 계기로 네티즌 사이에 저작권 논쟁이 뜨겁게 달아오른지 한달여. 국회 문광위 소속 여당의원 3인(윤원호.정청래.이광철)이 공동주최한 이 날 세미나는 디지털 시대에 맞춰 저작권법의 추가적인 개정논의를 위해 마련된 자리였지만 법보다도 미비한 시장여건에 대한 지적이 자연스레 터져나왔다.

▶ 이병두 이앤컴파니 본부장이 ‘사적복제와 기술적 조치의 보완''을 주제로 발제를 하고 있다. 프로젝터 화면에 보이는 것은 국내 온오프라인 음반시장규모 변화추이.

소비자만의 불만은 아니었다. "보아의 '넘버원'을 쓴 작사가"라고 자신을 소개한 김영아씨는 청중석에서 발언권을 얻어 "제 작품 3백여곡이 모두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저작권 신탁이 되어있지만 제 곡을 찾을 수 없는 유료사이트가 무수하다"면서 "현실적으로 이런 시장을 제대로 키우고 난 뒤에 법조항의 문구를 수정하는 게 순서일 것"이라고 의견을 냈다.

이에 대해 발제자 오승종 교수(성균관대 법학과.변호사)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같은 문제"라면서 "관련 법규정이 완비되면 시장이 재빠르게 움직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육교수의 문제제기에 최경수 저작권심의조정위원회 연구실장은 "시장이 안돌아가면 나라도 그냥 쓴다"고 공감하면서도 "이 자리의 논의는 법률제정단계에 대한 것이라서 실행단계까지 토론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상황론을 폈다.

이 날 세미나의 당초 촛점은 저작권법 제27조의 '사적 복제'관련 개정안. 현행 법규에 따르면 개인 또는 가정에서의 비영리 목적의 복제는 허용되고 있지만, 복사기로 복제하는 것은 해당되지 않는다. 대량복사에 의한 저작권침해를 막자는 취지다. 발제를 통해 소개된 개정안은 디지털 기술의 발전을 감안해 '저작권을 침해하여 만들어진 복제물 또는 정당한 권리 없이 배포.방송.전송된 복제물을 그 사실을 알면서 복제하는 경우'도 사적 복제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 골자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이견이 분분했다. "법개정 보다는 기술발전에 맞춰 (불법복제의 내용을)그 때 그 때 시행령으로 추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전문영 변호사.음원제작자협회 법률고문)"저작권(카피라이트)에 이미 복제권이 포함돼있는데 '저작권을 침해하는 복제물'등의 문구로는 컨텐츠의 불법.합법 여부를 판단하기에 매우 불분명하다"(육소영 교수)"불법여부를 알았느냐 몰랐느냐의 판단은 법적용이 어렵다"(오승종 교수)등이다.

블로그.미니홈피도 토론의 도마에 올랐다. 지정토론자로 나선 최경수 실장과 오병일 진보네트워크 사무국장 사이에 대립각이 두드러졌다. 최실장은 "비영리 목적이라고 해도 인터넷은 누구나 접근가능한 공적 공간이고 그 자체가 통제불가능한 거대한 복제창고"라면서 "오프라인에서와 달리 온라인에서는 사적인 복제와 전송 모두 허용될 수 없다"고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반면 오국장은 "블로그나 미니홈피는 아는 사람이 주로 찾는 사적 공간이기도 한데, 현행 저작권법이 이런 사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지나치게 규제하고 있다"면서 "사적인 정당한 이용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가 논의되야 한다"고 주장했다.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는 못했지만, 이 날 제시된 논점들은 연중 토론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문화관광부는 올해안에 저작권법을 전면개정할 계획으로, 개정안 초안 마련에 앞서 다음달 15일까지 각계의견을 접수하고 있다. 사회자 이광철의원은 "이 자리를 시작으로 여러 차례 토론회가 벌어질 것"이라며 세미나를 마무리했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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