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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동방 원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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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오병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알렉산더 대왕이 동쪽으로 간 까닭은? 영화감독 올리버 스톤은 영화(알렉산더)에서 주인공(콜린 파렐)의 입을 통해 대답했다. "동쪽을 변화시켜야 한다. 땅과 금이 넘치는 제국이 아니라 정신문명이 살아 있는 제국을 건설해야 한다"고.

실제로 알렉산더 대왕이 동방에 그리스의 선진 문명을 전파해야겠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은 크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였으니까. 알렉산더는 아버지 필립포스가 황제교육을 위해 특별초빙한 석학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그리스 문명의 우수성을 배웠다. 그의 헬레니즘 취향은 테베의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확인된다. 항복을 거부한 테베를 철저히 짓밟았다. 저항하는 6000명을 도륙하고 시민 3만명 전원을 노예로 팔았다. 그 와중에 시인 핀다로스의 집은 건드리지 않았다. 그가 존경하던 그리스 문인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그리스는 아테네의 페리클레스로 상징되는 직접민주주의를 경험한 정치 선진국이다. 시민은 스스로 지도자를 뽑고, 반대로 지도자는 시민의 의견을 경청하는 전통을 쌓아 왔다. 반면 동방은 신과 동격인 왕이 군림하는 폭정의 본거지였다. 알렉산더는 동방으로 쳐들어가 전제 왕정을 무너뜨린 다음 그리스 문명을 이식하고자 했다. 마케도니아 장교와 현지 여성과의 집단 혼례식을 거행하는가 하면 페르시아의 젊은 청년 수만명을 마케도니아식으로 훈련시켰다.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와 같은 70개의 그리스식 신도시를 만들어 현지인을 강제 이주시켰다.

당시 동방의 패자는 페르시아 왕국이다. 오늘의 이란인이 그 후손이다. 페르시아에 앞서 메소포타미아를 수천년간 지배했던 제국은 바빌로니아다. 오늘의 이라크가 그 중심이다. 서방이 동방으로 들어가는 입구이자 반대로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지중해로 나오는 출구가 페니키아다. 오늘의 시리아다. 알렉산더의 첫번째 아내는 아프가니스탄 공주였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에서 승리하고 이제 이란과 시리아를 노려보고 있다. 궁지에 몰린 이란과 시리아가 함께 미국에 맞서자고 다짐하기에 이르렀다. 이란.시리아가 페르시아.페니키아가 아니듯 부시 대통령이 알렉산더일 수는 없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역사는 200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반복되는 듯하다. 자유의 확산은 분명 헬레니즘적 구호다.

오병상 런던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