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유전자 없어도 유전되는 문화, 모방의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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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수전 블랙모어 지음
김명남 옮김
 바다 출판사, 462쪽
1만5000원

인간의 사고나 행동의 상당 부분이 유전자의 ‘배후 조종’에 따른 것이라는 진화생물학자 도킨스의 주장은 과학계에서 이제 거의 진리로 통한다. 하지만 인간은 생물학적인 유전자만 주변에 퍼뜨리고 후세에 남기는 게 아니라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인간은 행동을 통해서도 자신의 흔적을 주변에 확산하고 후손에게 연결해준다는 것이다. 도킨스는 저서 『이기적 유전자』에서 이를 ‘밈(Meme)’이라고 이름 붙였다. 모방을 비롯한 비유전적 방법으로 (주변과 후손에게) 전달된다고 여겨지는 문화적 요소를 가리킨다.

영국 심리학자이자 과학저술가인 지은이는 이 책에서 밈을 바탕으로 인간 행동과 문화 발전의 원동력을 파악하려고 시도한다. 그가 주목한 가장 중요한 힘은 모방이다. 도킨스가 서문에서 드는 사례의 하나가 사내 아이들의 포경수술이다. 이는 유전과도, 과학적인 이유와도 무관하다. 다만, 그 시대, 그 지역 의사들의 취향과 성향, 그리고 유행에 달린 것이다.

대중문화 유행도 여기에 해당한다. 유전자를 공유하는 같은 집안의 남녀라도 세대나 시대의 유행에 따라 클래식을 즐기기도 하고, 비틀스를 좋아하기도 한다. 이 모두가 ‘밈’의 발동이다. 주변에서 배운 것이 사고와 행동에까지 영향을 끼친 것이다.

밈를 통해 인간은 언어를 익히고 모태신앙을 받아들였으며, 뇌도 폭발적으로 성장했다는 주장이다. 유전자가 인간을 결정한다는 ‘물질 결정론’과 문화가 주변에 영향을 끼친다는 ‘정신 결정론’이 어우러진, 새로운 세상이 눈앞에 보인다.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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