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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건축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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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한국민의 반수 이상이 아파트에 산다. 요즈음 태어나는 아이가 경험하는 집이란 곧 아파트다. 싸고 비싸고, 좁고 넓고 하는 차이는 있겠지만 그 사각형 콘크리트 곽 속에 우리 몸은 차곡차곡 포개져 있다. 닭장이라 불리는 그 판박이집 살이가 싫다는 사람도 늘어난다. 그런 이가 꿈꾸는 건 마당 있는 집이다. 좀 불편하게 살더라도 내 집에서 눈비 맞으며 흙 밟고 살고싶은 이에게 필요한 건 그 소원을 설계해줄 건축가다.

건축전문지 'AQ'창간호가 건축 비전공 대학생에게 그 이름을 물었다. '당신이 사랑하고픈 건축가는 누구인가'. 1위는 안토니오 가우디였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세워진 그의 건축 유산은 인간 상상력의 끝모를 능력에 감탄사를 터뜨리게 하는 관광 명소다. 2위는 일본 출신의 안도 다다오. 권투 선수를 하다 독학으로 건축가가 된 그의 인기는 신비할 지경이다. 3위에 와서 한국 건축가 김수근이 등장한다.

재미있는 조사 결과는 4위에 오른 이창하씨다.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어려운 이웃의 집을 고쳐주는 천사표 건축가로 등장한 그에게 표가 몰렸다. 해설자는 '이것이 지금 우리 건축동네의 리얼리티'라고 썼다. 건축가이기 이전에 하늘 가릴 지붕을 얹어주는 착한 사회사업가를 사람들은 더 기억한다.

한국에서 건축과 건축가에 대한 이해는 이 정도다. 렘 콜하스나 장 누벨 같은 외국 유명 건축가가 설계한 건물이 서울 도심에 솟아나는 한쪽에서 한국 건축가는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국내에서 열리는 국제설계경기에 응모조차 할 수 없는 홀대를 당하는 우리 건축가들의 허탈한 얼굴은 안쓰럽다.

최근 중국 베이징(北京)에 자사 건물을 지은 한 대기업은 중국 건축계에서 큰 평가를 받고 있는 한국 건축가를 제치고 미국 설계사무소에 일을 맡겨 중국인의 궁금증을 자아냈다. 독일 베를린에 새로 지은 한국 대사관 또한 한국 건축가를 잊고 외국인 손을 빌려 외교가의 구설에 올랐다. 세계 각국이 스타 건축가를 키우며 건축으로 국력을 뽐내는 시대에 우리는 자국 건축가를 업신여기는 바보짓을 하고 있다.

그래도 한국 건축은 꿋꿋하다. 지난해 제9회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건축전에서 '방(bAng)의 도시'로 세계 건축계의 눈길을 끈 정기용 기획자와 김광수.송재호.유석연 세 명의 건축가가 23일부터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미술관에서 귀국전시회를 연다. 한국 건축의 힘을 보여준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싶다.

정재숙 문화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