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사설

이산가족 상봉행사 끝내 좌절시킬 셈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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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1년 만에 열릴 것으로 기대되는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장소 문제에 대한 입장 차이로 난관에 봉착했다. 남측이 상봉장소를 금강산지구에 있는 이산가족면회소로 제안하자 북측은 금강산 관광을 재개해야 면회소에서 행사를 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자 청와대의 한 핵심 당국자는 “북한이 금강산 관광 재개를 이산가족 상봉의 전제조건으로 끝까지 걸고 나온다면 상봉행사를 안 해도 좋다는 게 정부 입장”이라고 밝혔다. 남북 양측은 지난 17일 첫 적십자 접촉에서 10월 17일에서 21일 사이에 상봉행사를 하기로 합의했었다. 그러나 장소 문제에 대한 이견(異見)과 준비기간이 한 달 이상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합의한 시점에 상봉행사가 열리기는 사실상 어려워졌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상황이 이런 지경에까지 오게 된 데는 북한의 책임이 크다. 언제나 그렇듯 이산가족 상봉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지난 10일 북한의 조선적십자회는 “지난 시기 쌍방은 추석을 계기로 북과 남의 흩어진 가족, 친척들의 상봉을 진행해 이산가족의 아픔을 덜어주고 혈육의 정을 두터이 한 좋은 전례를 가지고 있다”며 “올해에도 이날에 즈음해 상봉을 금강산에서 진행하자”고 제안했었다. ‘추석을 맞아 이산가족의 아픔을 덜어주자’는 지극히 인도적인 목적을 북한 스스로 앞세웠다.

그러나 북한은 복선(伏線)을 깔았다. 이산가족 상봉을 고리로 해 금강산 관광 재개는 물론 남측으로부터 대대적인 지원을 받아보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한적십자사의 지원이 쌀 5000t과 시멘트 1만 부대 등 130억원 수준으로 자신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금강산 관광 재개를 내세워 난관을 조성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남측의 지원 내용을 비난하는 논평까지 발표하기도 했다. 북한은 순수한 인도주의 정신으로 돌아와 장애물을 철회하길 바란다.

출구를 완전히 닫아버리는 식의 청와대 당국자 대응도 문제다. ‘금강산 관광 재개가 조건이라면 상봉행사를 안 해도 좋다’고 못 박는 행태는 ‘가물에 콩 나듯’ 열리는 상봉행사에 가뜩이나 애를 태우는 이산가족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것과 다름없다. 천안함 사건과 박왕자씨 피격 사망사건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금강산 관광 재개가 어렵다는 입장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상봉행사를 안 해도 좋다’는 것은 지나치게 경직된 태도다. 우리 당국이 이산가족 상봉의 인도적 의미를 외면한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운 것이다. 금강산의 면회소를 이용하기 어렵다면 대안을 적극적으로 제시하거나, 이산가족 상봉 규모에 따라 쌀 지원을 늘리겠다는 제안도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은가. 지난 1983년 KBS 방송이 벌였던 대대적인 이산가족 상봉 보도에 온 국민이 몇 달 동안 눈물을 쏟았던 기억을 청와대 당국자는 되살릴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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