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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중반에 처음 가 본 미술관에서 새 인생 그렸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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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호 10면

미술품 해설가 윤운중씨가 루브르 박물관 3층 루벤스 전시실에서 투어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작품 설명을 하고 있다. 그는 미술작품은 현장에서 직접 원화를 보고 느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운중씨 제공]

“저는 미술 전공자가 아닙니다. 처음엔 고흐랑 고갱이 형제인 줄 알았고 르네상스는 호텔 이름인 줄 알았습니다. 게다가 고등학교 때까지 축구선수였습니다. 미술하곤 전혀 관계 없는 삶을 살다가 30대 중반이 돼서야 처음으로 미술관이란 곳에 가봤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그래도 저보단 낫지 않나요. 미술이 어렵다고만 생각하지 마세요. 제가 오늘 미술도 재미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루브르·오르세의 인기 해설가, 공고 출신 윤운중

10일 오전 10시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지하철 역에 모인 20여 명의 한국인 관광객은 1m60㎝ 정도의 키에 까만 피부, 손에는 커다란 파일철을 든 남자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이날 하루 관광객들에게 루브르 박물관의 작품 해설 투어를 진행할 도슨트(미술해설가) 윤운중(43·사진)씨였다. 그는 “루브르 역은 1·7호선 환승역인데 1호선 뒤쪽으로 나가야 기다리지 않고 바로 입장할 수 있어요”라며 빠른 걸음으로 사람들을 지하도와 연결된 입구로 안내했다. 유리로 된 피라미드 옆 메인 출입구에는 사람들이 많이 몰려 검색대를 통과하는 데만 30분 이상 기다려야 했다. 2003년부터 루브르 박물관에 1000번 이상 왔다는 그의 말이 실감났다.

그는 “몇 년 전 루브르에서 관광객들이 안내원에게 가장 많이 한 질문을 조사했어요. 1위는 ‘모나리자 어딨어요?’였고 2위가 ‘지금 여기가 어디예요?’였대요. 그만큼 루브르는 넓고 복잡해요. 오늘 하루 10㎞ 넘게 걸을 텐데 자신 있어요?”
윤씨의 질문에 사람들은 빙긋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부분 20대 후반의 여학생들이었다. 평소에도 투어에 참여하는 사람은 20~30대 여성이 가장 많다고 했다.

고흐, 고갱이 형제인 줄 알았던 미술 문외한
그리스관부터 관람이 시작됐다. 거침없는 발걸음으로 관람객들을 박물관 이곳저곳으로 안내하다 ‘밀로의 비너스’상 앞에선 윤씨는 “이 석상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비너스입니다. 주로 얼굴만 봤겠지만 사실은 몸통까지 다 있는 것이죠. 밀로가 만들어서가 아니라 밀로라는 지방에서 발견돼서 밀로의 비너스입니다”며 “여긴 루브르에서 소매치기 많기로 유명한 작품 앞이니 조심하세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가방을 몸 앞으로 끌어안았다. 잠시 후 주변이 시끄러워졌다. 집시 여자 아이 두 명이 관광객의 지갑을 훔치다 경비원에게 발각된 것이었다. 윤씨는 박물관에서 활동하는 소매치기들은 주로 어린아이들이라고 했다. 계속된 투어는 로마 조각, 프랑스·이탈리아 회화, 르네상스, 이집트관 등을 돌며 오후 5시까지 이어졌다. 투어에 참가한 회사원 전형필(32)씨는 “아는 만큼 보이는 것 같다. 예전엔 교과서에 나온 그림 확인하는 게 일이었는데 내용을 알고 보니 새로운 것이 보였다”고 말했다.

이날 투어를 진행한 윤씨는 유럽에서 한국인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투어를 진행하는 회사 ‘헬로우 유럽’의 대표다. 주로 미술관이나 박물관 전시 해설을 하고 시내·외 주요 관광지 투어도 진행한다. 루브르 박물관 하루 투어 비용은 45~50유로(약 6만~7만원)다. 윤 대표는 2003년부터 지금까지 파리 루브르 박물관·오르세 미술관, 로마 바티칸 박물관, 영국 내셔널 갤러리 등 유럽의 주요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약 4만 명의 관광객에게 작품 해설을 했다. 그에게 설명을 들은 관광객들은 그를 미술 박사로 부른다. 하지만 정작 윤 대표는 미술사를 전공하지 않았다. 학력은 고등학교 졸업이 전부다. 8년에 걸쳐 유럽 전역의 미술관을 돌며 원화를 보고 한국어로 된 미술사 책은 모두 찾아보며 공부해 이뤄낸 결과다.

초등학교 때부터 축구선수로 운동을 했던 그는 부산 알로이시오 전자기계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삼성전자 공채에 합격했다. 이후 수원에 있는 연구소에서 제어알고리즘 연구원으로 일하며 무선 자동청소기·드럼세탁기 등을 연구개발했다. 12년간 연구원으로 근무하던 그는 1998년 직장을 그만두게 된다. “외환위기 때 회사에서 직원을 두 부류로 나눴어요. 나가야 할 사람과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절대 나가면 안 될 사람으로요. 전 후자였죠. 하지만 매일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대기업 생활이 너무 지겨웠어요”라며 회사를 그만둔 이유를 설명했다. “물론 많이 고민했죠. 한국 사회는 명함이 모든 것을 말해 주는 사회인데 그걸 놓는다는 게 쉽지 않았어요. 하지만 지금까지 남의 시각으로 산 것 같더라고요. 난 뭔가…라는 생각이 들면서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았죠.”

노숙을 해도 좋다는 각오로 회사를 나온 그는 이후 5년간 의류 무역회사를 운영했다. 그러던 중 로마에서 관광 가이드를 하고 있던 친구의 연락을 받았다. 유럽 관광객이 급격히 늘어나 손이 모자라니 함께 일해보자는 제안이었다. 윤 대표는 해외에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보겠다는 결심을 하고 로마로 향했다.

“2003년 3월 15일 로마에 도착했어요. 제가 기억력이 좋기도 하지만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 날이라 잊을 수 없는 날짜죠”라는 그는 친구가 진행하는 로마 시내, 바티칸 박물관 투어를 따라다니며 공부를 시작했다. “두 달간 죽어라 공부만 했어요. 다행히 바티칸 박물관에 한국어로 된 해설서가 있어 그걸 아예 통째로 외워 버렸죠. 그전에 회사 다니며 다뤘던 인공지능·초음파 센서 이런 것에 비하면 미술사는 덜 복잡했어요. 미술품에 3차원 회로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움직이지도 않잖아요.(웃음)”

윤 대표는 그해 5월부터 바티칸 박물관 투어 가이드를 시작했다. 매일 현장에서 원작을 접하다 보니 이때부터 미술에 눈뜨게 됐다고 했다. ‘이렇게 재미있는 세상을 모르고 살았다니…’라며 후회를 했을 정도로 미술에 푹 빠진 그는 재미있는 작품 해설 투어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 12월까지 7개월간 4200여 명이 윤 대표의 로마 박물관 투어를 들었다. “그땐 정말 엄청났어요. 박물관 쉬는 일요일 빼곤 6일 내내 아침에 바티칸 앞으로 가면 수십 명이 제 투어에 참가하려고 줄 서 있었죠.”

인기의 비결을 묻자 윤 대표는 어릴 때부터 남 앞에서 떨지 않고 말을 잘했다며 입담은 누구 못지않다고 말했다. 회사에 다닐 때도 프레젠테이션은 항상 그의 몫이었다. 하지만 입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했다. 그는 “저같이 기계를 다루는 일을 했던 사람은 절대 두루뭉술하게 일하면 안 돼요. 소수점 아래까지 정확하게 맞아떨어져야 하죠. 그런데 여기 와서 예술작품 설명하는 걸 들어보니 뜬구름만 잡더라고요. 게다가 가이드가 ‘이 색을 이렇게 쓰면 이런 느낌이 들죠’라고까지 말해 버려요. 그럼 관람객은 그 이상은 느낄 수 없거든요. 그래서 저는 있는 사실만 설명했죠. 대신 알기 쉽고 재미있게 말이죠”라며 “저는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안내인’이에요. 관객들이 작품을 보고 느낄 수 있는 곳까지 안내하는 게 제 역할이에요”라고 말했다. 객관적인 설명을 위해 윤 대표는 보조자료도 이용했다. 건축 도면이나 다른 미술관에 있는 그림 사진 등을 준비해 현장에서 눈앞의 작품과 곧바로 비교할 수 있게 했다.

고전 회화는 신화·성경·역사 알아야 보여
로마에서 큰 성공을 거뒀지만 그는 2003년 겨울 파리로 자리를 옮겼다. “저한테 로마는 민속촌 같은 곳이었어요. 관광객에겐 볼 것 많은 도시겠지만 정작 거기 사는 저는 별 재미가 없었지요. 즐겁게 살려고 유럽에 왔는데 지겨우면 안 되잖아요.” 파리로 온 윤 대표는 서양 미술사가 집약된 루브르 박물관이나 오르세 미술관의 작품들을 설명하기 위해 공부를 새로 시작해야 했다. 반찬은 안 사도 책은 사 봤다. 한국에 나올 때마다 대형 서점의 미술 코너에서 처음 보는 책은 모두 구입했다. 당시 책값만 1500만원이 넘게 들었다. 미술사를 전공하기 위해 파리에서 유학하는 학생들이 책을 빌리러 올 정도였다. 윤 대표의 전시 해설은 입소문을 타고 파리에서도 하루에 수십 명에서 많게는 100명씩 투어를 진행하는 등 흥행에 성공하게 된다.

그림 보는 방법에 대한 질문에 윤 대표는 고전 회화와 근·현대 회화는 보는 방법이 다르다고 강조했다. “서양 고전 회화는 주로 사람들이 글을 읽지 못하던 시절 그림으로 성경 내용을 알리기 위해 그려졌어요. 그 때문에 신화·성경·역사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있어야 해요. 예를 들어 한국 사람이 흰 저고리에 검정 치마를 입고 태극기를 든 여자 그림을 보면 한 번에 유관순인지 알고 3·1운동을 떠올리며 그림을 감상하죠. 하지만 배경 지식을 모르는 외국인이 같은 그림을 봤다면 ‘다들 모여서 뭐 하는 거지?’ 혹은 ‘귀여운 여자네’ 정도밖에 생각하지 못할 거예요.”

이어 그는 “근·현대 회화는 조금 달라요. 특히 낭만주의 이후 그림은 있는 그대로 느끼면 돼요. 다만 더 풍부하고 깊은 감정을 느끼려면 적어도 이 작품이 탄생한 시대적 배경 정도는 알아야 해요”라며 “누구나 예술을 느낄 수 있다? 제가 보기엔 아닌 것 같아요. 내용을 모르면 그냥 겉에서 감상이 끝나는 거예요. 관객도 노력해야죠. 화가가 몇 년간 뼈 빠지게 고민 고민해서 그린 걸 단 몇 초 만에 이해하려는 건 도둑 심보 아닌가요?”라고 말했다.

안정적인 것보단 불안함이 주는 긴장감에서 자신의 에너지가 나온다는 그는 또 다른 도전을 준비 중이다. 9월 말부터 한국에서 열릴 ‘아르츠 콘서트’를 진행하게 된 것이다. 서로 연관 있는 고전 미술과 클래식 음악을 공연장에서 함께 보여주고 연주한 뒤 이에 대한 해설을 하는 공연이다. 윤 대표는 “사람들이 영화나 드라마를 왜 볼까요”라며 “답은 간단해요. 재미있으니까요. 미술은 감성이 풍부한 사람만 좋아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미술도 얼마든지 재미있다는 것을 대중에게 보여주는 것, 그것이 제 새로운 도전의 목적이에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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