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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강남교당 박청수 교무, 12일 후원자들과 함께 기념 잔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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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 2000년 인도의 라다크 지방을 방문한 박청수 교무가 현지

원불교 강남교당 박청수(68) 교무와 관련해 몇가지 소문이 돌았던 것이 지난해 말이다. "말을 못해 바깥 활동을 끊었다더라." "일부러 말문을 닫았다던데." 진실은 와병이었다. 가벼운 뇌경색으로 3개월 간 입원치료를 받은 것이다.

"내내 링거만 놔주던 의사 말이 '피가 마르는 병'에 걸렸대요. 뭉친 피가 뇌신경을 막아 언어장애가 왔으니 피를 묽게 해야 한다더군요. 그때 '아하, 탈북청소년학교 준비로 뛰어다니느라 무리를 했구나' 싶었죠."

퇴원 후 활동을 재개한 박 교무는 얼굴이 약간 부은 듯 했으나 푸근한 말씨는 변함이 없었다. 그가 몸에 탈이 날 지경으로 준비했던 탈북청소년학교는 정부위탁사업. 본래 경기도 이천에 지으려 했으나 지난해 7월 주민의 반대라는 걸림돌에 부닥쳤다. "섭섭한 마음을 접고 지금은 경기도 안성에서 내년 개교를 목표로 준비 중"이라고 했다.

박 교무는 12일 경기도 의왕 성나자로마을에서 열리는 잔치 얘기를 꺼내자 비로소 표정이 밝아졌다. 그는 30년 전 이 마을의 나병 환자를 돕는 일에 뛰어든 이래 지금껏 봉사활동을 해왔다.

"성나자로마을 돕기 30주년 행사예요. 원불교 강남교당 교도 100명이 나환자 80명에게 생일 케이크를 전달하고 한바탕 노는 자리죠. 그간 저에게 도움을 주신 강원용 목사, 소설가 박완서 선생, 이인호 전 러시아 대사, 안병영 전 부총리 등 고마운 분들이 많이 참석하세요." 그는 "성나자로마을은 천주교 시설이지만 참석자들 모두는 내 종교, 네 종교의 구분이 없지요"라고 말했다.

성나자로마을은 그의 봉사활동의 분기점. 1960년대에 시각장애인들을 돌보던 박 교무는 성나자로마을 봉사를 계기로 원불교의 울타리를 넘어 이웃 종교에, 그리고 인도.캄보디아 등 지구촌 이웃들에게 손을 뻗는 계기가 됐다.

"나환자들은 모든 감각이 죽고 입술만 겨우 살아있다는 걸 그때 알았지요. 방이 따뜻한지, 빨래가 말랐는지 알려면 입술을 갖다대봐야 한대요. '촉각만 살아있어도 행복하겠다'는 그들의 말을 듣고 원불교의 '한 근원, 한 집안, 한 권속'정신을 실천해보자고 마음먹었어요."

성나자로마을을 드나든 지 3년 만에 운영위원이 된 박 교무는 고(故) 이경재 신부와 함께 일을 했다. 좋은 후원자들도 이때 만났다. 매년 수백만원씩 후원금을 건네주는 법정스님, 박완서씨, 24년째 이곳을 찾아주는 이건희 삼성 회장의 부인 홍라희씨 등이 그들이다.

전북 남원 출신으로 전주여고를 졸업한 해에 입교한 박 교무는 내후년 교무직을 은퇴할 예정이다. 그는 "개인 자격으로 봉사를 계속하겠지만 형편이 지금 같진 않을 것 같아 벌써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조우석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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