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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건설 인수전 점화 … 자금·경영능력이 변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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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현대건설을 둘러싼 두 ‘현대’의 대결이 시작됐다. 24일 현대건설 채권단은 보유 지분 34.88%를 매각하는 공고를 냈다. 채권단 공동관리(워크아웃)에 들어간 지 9년6개월 만이다. 같은 날 현대차그룹은 인수전 참여 의사를 밝혔다. 이미 TV 광고로 선제 공격을 해 온 현대그룹도 인수 의지를 재차 밝혔다. 이날 각기 다른 이유로 현대상선과 현대건설, 현대차 주가는 모두 뛰었다.

◆현대차 “인수의향서 제출”=외환은행 등 채권단은 연내 본계약 체결을 목표로 매각 작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다음 달 1일 입찰 참가 의향서를 접수하고, 11월 12일 본입찰을 실시해 11월 중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한다.

채권단이 내건 평가 기준은 두 가지. 하나는 매각대금, 또 하나는 인수자의 재무·경영능력이다. 익명을 원한 외환은행 관계자는 “국내는 물론 해외 기업이라도 인수 의사가 있다면 입찰 참여가 허용된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제3기업의 참여 가능성이 남아 있지만 현재까지 인수전은 2파전 양상이다. 현대차그룹과 현대그룹이 그 주인공이다.

현대차그룹은 이날 그동안 설로 떠돌던 현대건설 인수전 참여 의사를 확인했다. 다음 달 1일 인수의향서를 제출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그룹 홍보실 고위 관계자는 24일 “인수의향서 제출에 앞서 이달 말께 보도자료를 통해 입찰 참여 의사를 공식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다만 현대차그룹은 이번 인수가 정의선 부회장 승계 구도와는 관련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동안 시장에선 정 부회장이 최대주주인 현대엠코가 현대건설과 합병해 승계를 위한 자금을 마련할 거란 분석이 나왔다. 예상 인수가격은 3조5000억~4조원 수준이다. 현대차그룹은 충분한 자금력을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범현대가인 현대중공업·KCC도 현대차그룹의 인수를 측면 지원하고 있다. 하나대투증권 이창근 수석연구위원은 “현대차그룹이 인수할 경우 그룹 공사 물량이나 해상플랜트 부문에서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대그룹, ‘적통’ 강조=현정은 회장이 이끄는 현대그룹의 인수 의지 역시 강하다. 현대상선·현대엘리베이터·현대증권은 이미 지난달 공시를 통해 인수전 참여를 공식화했다. 또 21일부터는 ‘현대건설, 현대그룹이 지키겠습니다’는 TV 광고를 내보내고 있다. 고 정주영·정몽헌 회장 부자의 흑백사진을 나란히 보여 주며 현대건설을 승계한 적통임을 강조하는 전략이다.

현대그룹이 자체 동원할 수 있는 현금은 1조5000억원 정도로 추정된다. 시장에선 현대그룹이 추가 자금 마련을 위해 재무적 투자자를 모집하거나 계열사를 일부 매각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익명을 원한 그룹 관계자는 “외국계 펀드 등으로부터 자금 조달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며 “예정대로 인수의향서를 제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그룹주 강세=이날 주식시장에선 현대그룹주가 강세였다. 현대상선이 상한가(4만3050원)까지 올랐고 현대엘리베이터가 11.3%, 현대증권이 2.9% 올랐다. 인수전이 현대그룹에 유리하게 전개될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현대상선 지분 8.3%를 가진 현대건설을 현대차그룹이 가져가면 지배구조에 불안을 느낀 현대그룹이 주식 매입에 나설 거란 기대가 반영된 것이다. 현 회장 측의 현대상선 지분율은 44.2%, 현대중공업·KCC·현대건설의 보유 지분을 합치면 39% 정도다. 우리투자증권 송재학 연구원은 “현대상선의 현재 주가는 다른 해운사보다 상당히 비싸다”며 “인수합병이 아니고서는 주가 상승을 설명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현대건설과 현대차의 주가도 상승세를 탔다. 현대건설의 경우 인수 경쟁이 본격화된다는 기대감에 주가가 3.2% 올랐다. 현대차와 기아차 주가는 각각 52주 신고가를 새로 썼다. 현대건설 인수설이 처음 나온 지난 7월 1일 주가가 급락했던 것과는 달랐다. 신영증권 박화진 연구원은 “자동차 업황이 워낙 좋은 데다 인수에 필요한 자금이 충분해 인수전 참여 소식이 주가에 악재가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태진·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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