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 의식 조사] 험악해져가는 세상 문제해결 출발점은 '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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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가 해체 위기에 이르렀다는 우려가 부쩍 늘어났다. 여러 가지 지표와 현상에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일터에선 구조조정과 노사분쟁이, 교육 현장에선 입시 부정과 고교 성적 조작이, 정치와 사이버 세계에선 욕설과 비방이 난무하고 있다. 놀이 공간은 노동력 재생산을 위한 안식과 휴식 대신 정신적 육체적 피로를 낳는 곳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주변의 일상생활에까지 파열음이 확산되고 있다. 급증하는 이혼율과 급락하는 출산율에다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가 만연해 있다. 얼마 전엔 사법부 수장을 지낸 80대 노인이 한강에 투신했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우리의 가정과 사회가 온전치 못한 증거로 볼 수 있다. 이처럼 헝클어진 실타래를 어디에서부터 풀어내야 할까.

추석이나 설날이면 전국의 도로망은 어김없이 몸살을 앓는다. 성묘객과 고향의 부모를 찾는 자손들 때문이다. 가족문제가 심각하다는 지적에 공감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가족유대가 여전히 강력하다는 증거다. 그래서 정보화와 세계화의 거센 물결 속에서도 "인간이 바뀔 수 있는 장소가 어머니의 무릎"이라는 지적에 공감하게 된다.

중앙일보-경기문화재단이 공동으로 효 의식을 조사한 배경이 여기에 있다. 부모와의 관계 및 교류 실태를 통해 우리 사회 효의 현 주소를 파악하고 미래를 전망하고자 했다. 일과 놀이, 정치와 교육 현장 등 중요한 삶의 공간에서 야기된 문제와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출발점에 효를 내세우자는 뜻도 담겨 있다.

인간을 만드는 제 1의 공간이 여전히 가정이라고 믿고 있다. 거기에 가족과 효가 자리잡고 있다. 한국은 유교국가 가운데 효 사상이 가장 내면화됐다고 한다. 괴테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있거든 그것을 얻되 네 것이 되게 하라"고 했다. 이번 여론조사를 통해 우리는 효의 역할과 가능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이근무 아주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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