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뇌진탕, 가볍게 여기지 말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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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MBC ‘무한도전’팀이 온갖 어려움 속에서 1년여에 걸쳐 프로 레슬링을 연습하고 시합하는 장면들이 방영되면서 많은 시청자에게 큰 감동을 줬다. 특히 정형돈은 연습 도중 뒤통수로 링 바닥에 떨어지면서 극심한 고통을 호소했고 병원으로 급히 이송돼 가벼운 뇌진탕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정형돈은 시합 당일 연습 도중엔 뇌에 충격을 받아 구토를 하기 시작했으나 본인의 의지로 계속 연습과 시합에 임해 시청자들의 박수를 받았다. 그러나 이러한 도전은 일반인에게는 ‘무한감동’일지 모르지만 의사의 관점에서는 매우 ‘무모한 도전’이라는 생각이 든다. 만약 뇌에 충격이 와 구토가 올 정도라면 자기공명영상장치(MRI) 등을 이용한 정밀검사를 하고 안정을 취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 레슬링 경기를 계속 하는 건 위험하다.

미국의 전설적인 야구선수 루 게릭을 죽게 한 것도 루게릭병이 아니라 야구를 하는 동안 받은 반복 외상, 즉 뇌진탕 때문이었다는 주장이 최근 유명 학회지에 게재되기도 했다. 뇌진탕을 가볍게 여겨선 안 된다는 것이다.

뇌진탕은 머리에 물리적 충격을 받은 뒤 뇌의 물리적 손상 없이 일어나는 뇌 기능 장애를 말한다. 뇌가 단단한 두개골 안에서 과도하게 흔들리게 되면서 뇌 기능이 일시적으로 중단됐다가 회복되는 경미한 뇌 손상을 말하며 뇌 영상검사에서 구조적인 이상이 없는 경우다.

뇌진탕의 가장 대표적인 증상은 의식착란과 기억상실이다. 의식착란은 의식이나 사고(思考)가 또렷하지 않은 상태를 말하는데, 의식착란이 없는 대신 두통이나 어지럼증을 호소할 수도 있다. 뇌진탕에서 기억상실은 사고(事故) 당시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으로 의식이 돌아와도 사고 당시의 기억은 영구히 회복되지 못할 수도 있다. 심한 경우는 사고 직전이나 직후의 일들도 기억해 내지 못할 수도 있지만 기억상실 기간이 24시간을 넘지는 않는다. 뇌진탕은 의식을 잃을 수도 있지만 꼭 의식상실이 있는 것은 아니며 의식상실이 나타나도 30분 이상 지속하지 않는다. 그 외에도 구토·시야 흐림·불안·초조 등이 동반돼 나타날 수도 있다.

이러한 뇌진탕의 증상들은 머리를 다치고 난 직후 가장 흔히 나타난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처음에는 증상이 없다가 수분 또는 수시간 후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에 두부 외상 후 증상이 없더라도 바로 운동을 다시 시작하는 것은 곤란하다.

가벼운 머리 손상을 입은 뒤 두통이나 어지럼증 같은 증상이 발생해도 대부분 3개월 이내에 대부분 완전히 회복된다. 그러나 손상 강도가 심하거나 손상이 반복되면 회복 기간은 길어진다. 짧은 기간 동안 경증의 손상이라도 반복해 받게 되면 영구적인 뇌 손상의 위험이 크게 증가한다. 즉 드물지만 영구적으로 두통·어지럼증·집중력장애 등이 있을 수 있다.

또 젊은 날에 뇌진탕을 경험했던 사람에게는 수십 년이 지난 뒤 알츠하이머치매나 파킨슨병 같은 뇌의 퇴행성 질환이 일반적인 발병 연령보다 조기에 나타날 수 있다는 일부 연구 결과도 있다. 뇌진탕 후 수개월 혹은 장기적으로 나타나는 이러한 증상들이 과거에는 주로 심리적 원인 때문이라고 믿었지만 현재는 이 증상들이 뇌에 가해진 (영상검사에서도 안 보이는) 미세한 손상에 의해 일어난다고 이해하고 있다. 미세하게 뇌출혈이 생기기도 하며 뇌의 퇴행성 변화를 유발하는 단백질이 뇌진탕 후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뇌진탕 후 만성적으로 두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심한 외상을 당한 경우보다는 오히려 가벼운 외상을 받은 경우에 더 많다고 하므로 가벼운 뇌진탕이라고 해서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경희대 의대 교수 가정의학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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