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추억] 60년대 액션영화 붐 주역 황해씨 별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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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1960년대 한국 액션영화를 꽃피운 원로배우이자 가수 전영록씨의 아버지인 황해(본명 전홍구)씨가 설날인 9일 오후 9시 12분 서울 방이동 자택에서 지병으로 타계했다. 83세. 막내 아들인 작곡가 진영씨는 "아버님이 97년부터 당뇨로 고생하셨고, 최근 몇 년 간은 이틀에 한 번 꼴로 병원에서 혈액 투석을 받으셨다"고 말했다.

황씨는 50년대 중반 전쟁의 상처를 딛고 새롭게 일어선 한국 영화계의 산증인이었다. 고(故) 허장강.박노식.독고성씨, 그리고 장동휘(86)씨 등과 함께 50~60년대 한국 액션영화의 붐을 일으킨 주역이었다. 불량기가 넘치면서도 결국에는 선한 인물로 돌아서는 악역을 많이 맡아 한국영화의 스펙트럼을 넓힌 연기자라는 평가도 받았다.

한국영상자료원의 이효인 원장은 "신성일.신영균씨 등이 주도했던 60년대 한국영화의 전성기는 사실 고인같은 선배 배우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고인은 1922년 강원도 고성에서 태어났다. 36년 경성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제일가극단.신태양가극단 등에서 활동하다가 49년 한형모 감독의 '성벽을 뚫고'로 스크린에 데뷔했다.

이후 '나는 고발한다' '지평선' '5인의 해병' '두만강아 잘 있거라' '박서방' '마부' '한네의 승천''독 짓는 늙은이' 등 200여편의 영화에 주.조연으로 출연하며 개성 강한 남성상을 표출했다. 90년 문성근.박중훈씨 등과 함께 출연했던 박광수 감독의 '그들도 우리처럼'을 마지막으로 영화 현장에서 물러났다.

72년 '평양폭격대'로 대종상 남우주연상을, 78년 '부초'로 한국연극영화예술상 최우수 연기상을 받았으며, 2003년 한국영화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로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상명대 조희문 교수는 "고인은 악역이면서도 인정미 넘치는 캐릭터로 많은 영화팬의 사랑을 받았다"고 회고하고 "평생 연기자로서 행복한 삶을 사신 편"이라고 말했다.

유족으로는 원로가수인 부인 백설희(78)씨와 4남 1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 풍납동 아산병원이며, 발인은 12일 오전 9시다. 02-3010-2294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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