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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윤증현 장관 연설 톡톡 튀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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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관료의 연설은 따분하고 천편일률적인 경우가 많다. 통상적으로 각 부처의 공식적인 견해를 국민에게 충실하게 전달하기 위한 강연·연설이 많아서 ‘튀는 표현’은 가급적 자제한다. 그런데 요즘 관료의 연설이 좀 달라졌다. ‘공무원스럽지’ 않고 상대국의 역사적·사회적 맥락을 고려하는 세련된 접근도 눈에 띈다. 공무원의 시계(視界)가 주요 20개국(G20) 의장국 효과로 넓어졌기 때문일까. 외국 손님을 많이 치르는 윤증현(얼굴) 기획재정부 장관의 최근 연설과 발언에서 두드러진 현상이다.

지난 16일 저녁 청와대 영빈관. 이명박 대통령이 한·아프리카 장관급 경제협력회의(KOAFEC) 참가국 아프리카 대표단을 초청, 저녁식사를 함께했다.

이날 윤증현 장관은 톡톡 튀는 만찬사를 했다. 참석자들이 네 차례나 박수를 보낼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 만찬사는 기업의 프레젠테이션을 연상시킬 정도로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치밀하게 구성됐다. 먼저 로버트 레드퍼드와 메릴 스트리프가 주연한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주제가를 들려줬다.

그러고 나서 윤 장관은 “젊은 시절 한때 영화감독을 꿈꿨다. 오늘 KOAFEC 장관회의를 계기로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Into Africa(아프리카를 향하여)’란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상상을 했다”고 말했다. 청중은 박수로 화답했다. 장관직에서 물러나면 아프리카의 전통 악기인 ‘젬베’와 ‘두둠바’ 연주를 배우고 싶다는 언급에서 또 박수가 터졌다.

일단 분위기를 조성한 뒤 본격적인 세일즈가 이어졌다.

“ 비록 한국이 양적 측면에선 다른 강대국에 비해 영향력이 미미할 수 있으나 ‘개발경험의 질적 측면’에선 그 어느 나라와 비할 수 없는 노하우가 있다. 한국은 단기적 이익에 집착하지 않고 신뢰를 바탕으로 장기적인 협력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데 주력하겠다. 한국인에게는 ‘따뜻한 가슴(warm heart)’이 있다.”

장관 연설문은 부처 소속 공무원이 쓴다. 여기에 윤 장관은 자신의 개인사를 담아 친근감을 주거나 해당국 청중이 귀 기울일 만한 얘기를 넣곤 한다. 15일 KOAFEC 개회사에선 소년 시절 겪었던 1959년 태풍 사라의 경험을 실마리로 최근의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경제 태풍’ 얘기를 끌어냈다. 18일 G20 정상회의의 의제 조율을 위해 장기 출장을 떠난 그는 해외 연설과 면담에서도 비슷한 접근방식을 구사할 예정이다.

20일 러시아에서 열리는 한·러 경제공동위에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각 다르다”는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를 인용하며, 기업이나 국가정책도 철저한 위기 진단과 과감한 개혁이 필요함을 강조할 것으로 알려졌다. 21일 독일에서 장클로드 트리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를 만나서는 고교시절 제 2 외국어로 독일어를 배운 경험과 영화 ‘황태자의 첫 사랑’에서 본 하이델베르크성을 소재로 대화를 풀어나갈 것으로 전해졌다.

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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