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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안 간 건 강아지와 나뿐” 조선족 마을에 조선족 딱 1명 ③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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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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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룽장대학 한국어학과 3학년인 황금화 양.


#4 한족학교 다니고 집에서는 중국말 써

동포 대학생을 만나는 일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여러 조선족마을에 타전했지만 한결같이 “방학이라 부모님이 있는 한국에 가거나 형제·자매가 있을 대도시로 나가버렸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결국 하얼빈시에 있는 헤이룽장대학 한국어학과 신창순 교수의 도움을 받아 겨우 한 학생을 만날 수 있었다.

8월 4일 오전 11시께, 헤이룽장대 교정에서 만난 한국어학과 3학년생 황금화(23) 양은 졸업 후 중국 대도시로 진출하기를 희망하고 있었다. 선호 지역은 상하이. 삼성·현대·LG 등 한국계 대기업 현지법인에 취업하는 것이 우선 목표다. 대학원 진학 후 한국으로 가 중국어 강사가 되고 싶은 꿈도 있지만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아 보류 상태라고 했다.

하얼빈시 퉁허(通河)현 출신의 금화 양은 고등학교까지 모두 한족학교를 다녔다. 집에서 우리말만 썼지만 한글을 제대로 배운 것은 대학에 진학한 이후였다. 제2외국어로서 한국어(중국의 공식 소수민족어 중 하나인 조선어와는 다름)를 가르치는 한국어학과에 진학한 이유도 그 때문인 듯했다.
신 교수에 따르면 한 학년에 70명인 한국어학과에서 조선족은 2명뿐이란다. 나머지는 모두 한족이다. 금화 양외에 다른 한 학생 역시 한족학교 출신. 금화 양은 아직도 한국어 중 ‘예’와 ‘네’ 같은 비슷한 발음이나 ‘버스’ ‘택시’ 같은 외래어는 익히기 어렵단다.
작고한 경상남도 출신의 할아버지는 19살 때인 1939년에 중국으로 건너왔다. 항일전쟁에서 활약한 공훈이 인정돼 현(縣) 정부에서 민정과 과장을 지냈다고 한다. 12살의 어린 나이에 중국으로 온 할머니(80)의 고향은 마산이다. 금화 양은 올해 쉰이 된 아버지 그리고 할머니와 함께 산다.
“조선족소학교를 다니고 싶었지만 시골에 학교가 없어서 하는 수 없이 한족학교에 다녔어요. 어머니는 한족이에요. 하지만 저는 조선족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늘 조선족이라고 생각했지, 한족이라고 느낀 적은 없어요.”

친구 중 동포 학생은 7명. 조선족학교를 나온 세 친구를 만나면 우리말만 쓴다고 한다. 하지만 한족학교를 나온 친구 중에는 우리말을 거의 못하는 경우가 있어 중국어로 대화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겨우 ‘안녕하세요’ 정도만 할 수 있어요. 나이가 어린 친구일수록 더 그런 경향이 강한 것 같아요. 물어보면 집에서도 부모님과 중국말만 쓴다고 해요. 음식도 한식이 아닌 중국식을 먹고, 한족학교를 다녀서인지 취미도 완전 한족 스타일이에요. 아리랑을 모르는 친구도 있는걸요.”

$5 “옌볜자치주를 옌볜시로” 동포들 술렁
지린성 창춘으로 가는 고속도로는 무척 답답했다. 쑹허(松花)강이 범람해 1시간째 차량들이 완전히 멈춰 섰다. 7월 말 내린 폭우로 사상 최대의 물난리를 맞은 옌볜(延邊)조선족자치주의 피해가 극심하다는 소식이 전해질 무렵이었다. 현지 보도는 6000여 채의 가옥이 무너지고, 이재민이 50만여 명에 달한다고 전했다. 동포들이 가장 밀집돼 사는 지역이니만큼 걱정하는 분위기가 주변에서 자주 포착됐다.
창춘으로 간 것은 지린성·헤이룽장성·랴오닝(遼寧)성,즉 동북3성의 언론인 및 민족문화 관계자 모임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다. 익명을 요구한 탓에 그들의 신분을 밝힐 수는 없지만 ‘조선족마을의 현실’에 대한 의미 있는 분석을 들을 수 있었다.

랴오닝성 푸순(撫順)시에서 온 민족문화 관계자 A씨는 “랴오닝성 내 조선족마을 90% 이상을 다녀보니 특이한 점이 나타나고 있다”면서 "선양(瀋陽)에 있는 만융촌의 경우 주변은 물론 헤이룽장성 등에 살던 조선족을 흡수해 오히려 마을이 더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600여 가구였는데 만융촌 안에 공단이 생기고 아파트가 들어서자 급속도로 불어났다는 것. A씨는 현재 만융촌에 1500가구 이상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만융조선족중심소학교(초등학교)학생 수도 늘어 지난해 말 기준 246명이 됐다고 한다.“농사 짓는 조선족이 사라지고, 무역·제조업 등에 종사하는 사람이 늘면서 이런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이는 극히 일부의 사례로 랴오닝성 조선족마을의 전체적인 양상은 급속한 추락이라고 볼 수밖에 없죠. 개방 이전 105개교였던 조선족학교(초·중·고 및 사범학교) 중 이제 남은 학교가 절반 가량인 52개교일정도입니다.”

지린성 언론인 B씨도 “지린성에서 옌볜조선족자치주를 제외하고 중·고교 과정이 함께 있는 조선족학교는 8개교”라면서 “현 추세로 볼 때 5년 내 2개교만 남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B씨는 이미 옌볜대학 재학생 중 한족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렸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폐교 위기를 막고 운영비를 마련하기 위해 호구지책으로 한족 학생을 받는 조선족학교도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B씨에 따르면 창춘 시내 조선족학교 중 초등학교 3곳과 6년제 중학교(중·고교 함께 운영) 1곳에서 한족 학생을 받고 있다. 올해 처음으로 고교과정 6개 반 중 2개 반(100명)을 한족 학생으로 충원한 학교의 경우 한족 응시자가 너무 많아 학교 측에서 당황했을 정도라고 한다.

“한족학생반은 중국어로 수업해요. 하지만 외국어로 우리말을 배울 수 있고, 이를 통해 취직이 잘될 것이라는 생각에 한족 부모의 관심이 매우 높습니다. 걱정되는 부분은 조선족학교 내 한족 학생 수가 조선족 학생 수를 역전하면 어떻게 될까 하는 점입니다. ‘조선족’이란 꼬리표를 떼고 연합학교로 갔다가 완전한 한족학교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헤이룽장성 언론인 C씨는 더욱 의미심장한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11월 중국 정부가 전국 단위 인구조사를 실시한다”면서 “이때 소수민족 자치행정이 가능한 인구 구성비 기준(30%)에 미달하는 지역이 나오면 어떤 조치를 취할지 주목된다”고 짚었다. 정확한 통계가 없으나 현재 옌볜조선족자치주의 경우 전체 인구 중 조선족이 32~35%의 구성비를 가진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호구(일종의주민등록)를 자유롭게 바꿀 수 없는 중국의 특성상 이 수치가 정확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많다.

3월 6일 열린 전국인민대표회의 지린성 소조회의에서 이룡희 옌볜조선족자치주장이 “옌지(延吉)·룽징(龍井)·투먼(圖們)을 묶어 옌볜시로 만들겠다”고 주장해 동포 사회에 큰 파문이 일었다. 자치구나 자치주는 있어도 자치시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칫 ‘조선족’이라는 민족명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이 주장의 논리에 찬성하는 동포도 상당하다고 한다. 자치주로 있는 한 재정 부담 때문에 발전이 더딜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서다.
인천공항행 비행기에 오를 때 그동안 만났던, 중국 땅에서 조선족으로 살아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구한말을 시작으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과 가난 해결을 위해 동북3성행 엑소더스를 택했던 그들 조상의 힘겨운 투쟁도 떠올랐다.

우리말을 할 수 있었기에 수교 후 ‘코리안 드림’을 안고 봇물 터지듯 한국행 여객기에 몸을 맡긴 사람들. 또 이미메갈로폴리스급으로 성장한 중국의 연해 대도시로 뻗어 나가는 젊은이들. 이들을 뒤로한 채 사라져가는 조선족마을과 조선족학교는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 행정안전부 지원 조선족마을에 농기계 전달

“동포들 소득 증대시켜야 급속한 마을 붕괴 막아…”

8월 3일 중국 헤이룽장성 우창시 소재 민락조선족향에서 뜻 깊은 행사가 열렸다. 재단법인 국제농업개발원이 행정안전부의 지원을 받아 농기계(바인더 5대)를 동북3성 농민들에게 기증했다.
행사에 참여한 국제농업개발원 이병화 소장은 “조선족 농민의 급속한 조선족마을 이탈을 막기 위해서는 소득을 증대해줘야 한다”면서 “그 일환으로 이번 농기계 기
증을 비롯해 여러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이 소장에 따르면 일반 쌀보다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는 기능미(면역 증강에 좋은 ß-글로칸 다량 함유미) 농법의 전수가 핵심이다. 또 배상면 양조학교와 협력, 재중동포를 초청해 누룩과 막걸리 제조 공정을 무료로 가르치는 프로그램도 추진 중이다. 이뿐만 아니라 조선족소학교와 한국 초등학교 간 교환학생 프로그램 등을 개발해 민족교육을 활성화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농기계를 전달 받은 하얼빈시 아청구 성건촌의 김정옥(64·여) 씨는 “한국 정부에서 관심을 가져줘 너무 기쁘다”면서 “앞으로 더 많은 조선족마을에 도움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① "조선족 살던 초가집에는 아무도 안 살아"

② 조선족 "한국 안간 건 강아지와 나뿐"

③ "옌볜자치주를 옌볜시로" 동포들 술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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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룽장성·지린성=글·사진 김상진 월간중앙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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