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연예] 박슬기 "누가 내 끼 좀 말려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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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치는 끼를 주체할 수 없었던 소녀가 있었다. 이름은 박슬기, 중학교 1학년생이었다. 소녀는 방학 때면 서울행 버스를 탔다. 한 손엔 학기 내내 모은 용돈이, 다른 한 손엔 연예기획사 주소를 적은 종이가 있었다. 그녀의 꿈은 가수였다. 강원도 일대에선 누구보다 노래 솜씨로 유명했다. 그녀는 버스 속에서 스타가 되는 꿈을 꿨다.

하지만 현실은 늘 꿈을 배반했다. 유명 기획사는 인내심이 없었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넘쳤기 때문이다.

세 명씩 한 묶음으로 오디션을 보는데 심사위원들의 시선은 항상 용모가 뛰어난 쪽을 향했다. 훈련을 하면 된다나. 그녀의 노래는 항상 30초 남짓에서 끊겼다. 그리고 돌아오는 말. "노래는 잘 하는데…." 그렇게 중학생 시절 10번의 좌절을 겪었고, 소녀는 꿈을 접었다. 원주여중부터 북원여고까지, 연극반 활동만이 그녀의 낙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운명처럼 기회가 왔다. '팔도모창 가수왕' 출신인 개그우먼 조정린이 이 프로그램의 예고편에 출연한 것이다. 이를 본 박슬기는 갑자기 해보고 싶다는 열정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지난해 1월 '2004 팔도모창 가수왕' 대회에서 가수 박정현의 모창으로 당당히 대상을 차지했다. 고2 때였다.

"꿈은 이뤄진다는 말이 실감나요. 연예인이 되다니요. 방송사 앞에 쭉 늘어선 줄에 있었을지 모르는데…."

길거리에서 자주 마주칠 것 같은 평범한 얼굴. 그러나 지난 1년간 박슬기의 성장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가수왕이 되기가 무섭게 출연 제의가 잇따랐다. 지난해 5월부터 방영된 MBC 시트콤 '두근두근 체인지'는 시작이었다. 그녀는 연예인에게 광분하고 공주병이 있는 '거울공주'역을 천연덕스럽게 해냈다. 덕분에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코미디.시트콤 부문 신인상을 차지했다. 영화쪽에서도 러브 콜이 왔다.

그녀는 최근 개봉된 영화 '몽정기2'에서 성적 호기심 왕성한 여고생 역으로 출연했다. 35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서다. 2005년 들어서도 여세는 그치지 않았다. 지난달 24일 방영하기 시작한 MBC 월요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에서도 주역을 맡았다. 겉모습은 중학생이지만 실은 수천년 묵은 대왕고모 흡혈귀 역할이다. 간혹 '오버'한다는 말도 듣지만 전반적으로 연기가 무르익었다는 평. 다음달이면 대학생(경기대 다중매체 영상학부)도 된다.

"과분할 정도의 기회가 계속 찾아왔어요. 반면 제 자신이 너무나 부족하다는 걸 느끼곤 해요. 겸손한 마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갈래요. 다행히 연극반 시절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

많은 사람이 그녀를 박경림.조정린 등과 비교한다. '쭉쭉빵빵'연예인들과는 다른 길을 걸으며, 타고난 입담과 재치로 시청자들을 즐겁게 해주기 때문인가.

"연예인들이 누구 닮았다고 하면 싫어하지만 전 아니에요. 제가 너무나 좋아하는 선배들과 비교되는 게 좋아요. 다만 선배들에게 누가 안 될지…." 그러면서 최근 '연예인 X파일'과 관련한 생각도 밝힌다.

"제가 연예계에 들어와 느낀 건데요, 연예인들에 대한 생각이 많이 왜곡돼 있는 것 같아요. 세상과 담을 쌓고 살기 때문에 사실 누구보다 순수하거든요. 저도 처음엔 얼마나 무서웠는데요. 섹스와 폭력이 넘칠 거라는 선입견 때문에요."

박슬기에게 2005년은 2004년보다 더욱 바쁠 것으로 보인다. 벌써부터 출연 제의가 잇따라 들어오고 있다. 하지만 당분간 '안녕, 프란체스카'에만 전념하겠다는 생각.

"차근차근 연기의 폭을 넓히고 싶어요. 기회가 되면 노래도 하고 싶고요. 참, 저 이제 외모 콤플렉스 극복했어요. '쭉쭉빵빵'과 달리 저만의 길이 있다는 걸 알았거든요."

글=이상복 기자<jizhe@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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