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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어민 사진속 인물들 81년 원산서 만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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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 1일 공개된 납북자 단체사진(본지 2월 2일자 1.11면 보도)에 나온 어민들을 강원도 원산에서 만났다는 증언이 북한을 탈출한 납북 어부에게서 나왔다. 1973년 대영호를 타고 납북됐다 2003년 탈북한 김병도(54.경남 통영시)씨다. 그는 2일 "사진에 나오는 사람들 중 여러 명을 원산에서 북한 당국의 교육을 받을 때 만났다"고 밝혔다.

김씨는 "납북된 직후 1년여의 교육을 받고 함남 함흥의 한 공장에 배치됐었다"고 한다. 그 뒤 77년과 81년 원산의 한 교육시설에서 각각 3개월씩 납북자 재교육을 받았는데 "81년 교육 때 이들을 만났다"고 그는 기억했다. 김씨는 이때 납북 어부들이 받은 교육에 군사훈련도 포함돼 있었다고 밝혔다. 북한이 어부들을 납치해 간첩으로 활용하려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갖게 한다.

당시 김씨와 함께 교육을 받은 사람은 22명. 김씨와 같은 배를 타고 끌려온 사람이 4명이고, 나머지 18명은 전부 다른 배 선원이었다. 이들 중 정형래(오대양62호)씨, 김옥률.박영종.박양수(이상 오대양61호)씨가 이번에 공개된 사진에 들어 있다고 그는 밝혔다. 김씨는 "이들이 경남 출신이어서 잘 기억한다. 사진에는 네 사람 외에 얼굴이 익지만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사람도 몇 명 더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정형래씨와는 특히 친해 집으로 찾아간 적도 있다. "정씨는 평남 덕천에 살고 있었다. 인근에 볼일이 있어 갔다가 집에 들렀었다"고 한다. "정씨는 반가워하면서도 대접할 것이 없어 난감해했다"고 그는 회상했다.

함남 고원의 탄광에서 일하던 김옥률씨는 교육 도중 다투는 바람에 여러 사람 앞에서 망신당한 기억이 뚜렷하다고 그는 말했다. 박양수씨는 한 책상에 나란히 앉아 시험 때 서로 베끼기도 했다. 박영종씨와는 몰래 숨어 술을 함께 먹은 적이 있다고 한다.


탈북 납북어부 김병도씨가 원산 납북자 교육시설에서 봤다고 증언한 어부들. 정형래(1.오대양 62호).김옥률(2.오대양61호).박영종(3.오대양61호).박양수(4.오대양61호). 사진은 납북어부들이 1974년 묘향산에서 찍은 것이다.

납북 어부들은 교육을 받는 중간에 카드놀이와 장기도 같이 했다고 한다. 교육이 끝난 뒤 이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때문에 정씨를 제외하고는 그 뒤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김씨는 "조만간 이들의 고향을 찾아가 가족들에게 내가 봤던 얘기를 해주고 위로의 말을 전할 생각"이라며 감상에 잠겼다.

70년 서해에서 북한에 납치됐다 2000년 탈출한 어민 이재근(65.봉산 22호)씨는 납북 어부들이 묘향산을 단체로 간 이유를 "거기에 국제친선전람관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일성.김정일 부자가 세계 각국에서 받은 선물들을 전시해놓아 납북자들의 필수 참관 코스라고 한다.

사진을 공개한 서울 신천동 납북자가족모임 사무실에는 "사진을 한 장 얻을 수 없느냐"는 납북 어민 가족들의 전화가 이어졌다. 이 모임의 최성용 회장은 "설도 다가오는 만큼 납북자 가족들에게 가급적 사진을 한 장씩 보내줄 생각"이라고 말했다.

사진을 확인한 오대양.휘영호 선원 가족들은 "정부가 하루빨리 이들을 가족 품으로 보내달라"고 요구했다. 아버지 이재명(69)씨의 얼굴을 확인한 옥철(42)씨는 "정부가 이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고 했으며 남편 박두현(69)씨가 납북된 유우봉(69)씨는 "송환은 안 될지언정 일단 생사확인이라도 해달라"고 요청했다.

강주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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