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미래, 부품·소재에서 찾다 ① 정보 아우토반 우리가 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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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대전시 대덕구에 있는 ‘빛과전자’ 사무실. 이곳은 1998년 세워진 광통신 전문 벤처기업이다. 이 회사 3층 연구실에선 10여 명의 연구원이 기기를 들여다보고 있다. “빛이라는 게 워낙 민감해 온도에 따른 반응을 일일이 체크해야 한다”(황월연 이사)는 설명이다.


2층에 위치한 생산라인은 연구실과 비슷한 분위기다. 하얀 방진복을 입은 근로자들이 기기 앞에 앉아 제품을 만들고 있다. 작은 먼지와 진동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제품 특성 때문일까. 조용하다. 이곳에서 가정 내 광케이블(FTTH)용 모듈 등의 통신 분야 핵심 부품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지금은 초당 1.5Gb~2.5Gb용 모듈 생산이 주력이다. 하지만 이미 10Gb짜리 모듈 개발 연구의 60~70% 정도를 마친 상태다. 매년 20억원 넘게 꾸준히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매출의 대부분은 수출이다. 2004년엔 수출 3000만 달러를 달성해 ‘수출의 탑’을 받았다. 사업 시작 단계에서부터 일본의 NTT와 거래를 이어왔다. 최근 북미 수출에선 관련 분야 세계 4~6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대전 대덕구의 벤처기업 빛과전자는 현재 통용되는 기술보다 5배 이상 빠른 10Gb급 광통신 모듈을 개발중이다. 이를 바탕으로 100Gb 기술도 선점한다는 계획이다. 성공하면 우리 기술로 ‘정보 아우토반’을 깔 수 있다. 사진은 빛을 전기 신호로 바꿔주는 광모듈의 일부다. [김성태 프리랜서]

빛과전자는 최근 정부가 발주한 광회선 분배기(OXC·Optical Cross Connector)용 광모듈 개발 사업을 따냈다. 광회선 분배기는 대용량 시스템 간의 신호교환을 위한 장비로 3년 안에 일본과의 기술 격차를 줄일 것으로 기대되는 20개 부품·소재 가운데 하나다.

빛과전자는 이 프로젝트로 6월부터 3년간 100억원을 지원받는다. 프로젝트엔 KT 등 대기업도 동참하지만 실제 연구는 빛과전자가 주도한다. 연구가 끝난 후엔 국내 365억원, 해외 1020억원 등 모두 1385억원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빛과전자는 이를 바탕으로 초당 100Gb 기술을 선점한다는 계획이다. 정보가 빛의 속도로 오가는 정보 아우토반을 우리 기술로 구축하게 되는 것이다.

빛과전자는 ‘차세대 통신부품 산업계’의 맏형 격이다. 차세대 통신이란 통화를 넘어 각종 멀티미디어 서비스를 가능하게 해 주는 걸 의미한다. 이미 스마트폰의 보급과 더불어 대세는 ‘데이터 서비스’가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 현재 고화질 영화 한 편의 용량이 5~6Gb 수준이다. 초당 10Gb의 속도로 데이터가 오가면 영화를 다운받으면서 감상할 수 있게 된다. 엔터테인먼트 외에 교육·국방·의료 등 활용 범위가 무궁무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통신장비 분야에서도 지금까진 삼성이나 LG 등 단말기 완성품 업체만 주목받아왔다. 그러나 당장 눈에 띄지 않는 부품과 시스템 등 통신 시장은 내수시장만 따져도 2015년에는 12조원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다면 국내의 기술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에 따르면 세계 최고 수준인 미국과 비교했을 때 92.7% 수준으로 1.01년의 기술 격차가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유럽(97.5%)과 일본(94.3%)에 이은 세계 4위 수준이다.

그러나 통신망이나 핵심 모듈 등 시스템 부문에선 단말기 부문보다 기술 격차가 큰 것으로 나온다. 세계 선두 그룹들을 살펴보면 노키아는 WCDMA 등의 핵심 원천기술을 바탕으로 낮은 비용으로 신흥 저가폰 시장과 선진 프리미엄 시장에서 독보적인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퀄컴과 에릭슨 등은 차세대 부품의 표준화를 적극 꾀하고 있고, 애플은 그래픽 인터페이스와 디자인을 바탕으로, 구글은 무선 인터넷의 활용 등에서 강점을 보이고 있다. 우리의 경우 휴대전화 제조기술은 세계 최상위권이지만 원천기술과 핵심 부품의 높은 해외 의존도 등이 장기적 제약요인으로 꼽힌다.

이런 상황에서 빛과전자 김홍만 사장의 얘기는 경청할 만하다. 그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서 16년간 연구원으로 일하다 기술력 하나로 회사를 만들었다. 김 사장은 “내가 연구원 출신이라 자연스레 기술 교류가 많이 이뤄진다”며 “민간의 창의력을 북돋을 수 있는 자극이 끊이지 않고 주어지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산학연이 함께 일궈나가야 할 게 많다는 얘기다.

특별취재팀=최현철·권호·김경진·권희진 기자
사진=김성태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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