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부동산 정책 누가 주도하나] 헨리 조지 사상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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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19세기 미국의 경제학자 헨리 조지의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게 아니냐는 논란은 2003년 '10.29 대책'이 나왔을 때부터 제기됐다. 10.29 대책의 핵심인 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 강화가 '부동산을 가진 사람에게 무거운 세금을 물린다'는 헨리 조지의 이론과 일맥상통한다는 것이다.

부동산 대책을 입안한 주역인 이정우 정책기획위원장은 경북대 교수 시절 '헨리 조지 연구회'를 만든 주인공이었다. 그가 11명의 저자와 공동으로 2002년 12월 출간한 '헨리 조지, 100년 만에 다시 보다'(경북대 출판부 간.사진)라는 책은 노무현 대통령도 탐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책은 공교롭게도 이 위원장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경제분과위)에 참여하기 전후 일선 서점에 많이 배포됐다. 그는 당시 사석에서 기자들이 "당신은 무슨 학파냐"고 물으면 서슴없이 "조지이스트다"고 대답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지난해 8월 부동산 정책의 주도권이 이 위원장의 손을 떠나 국민경제자문회의로 이관되면서 헨리 조지를 둘러싼 논란도 사그라지는 듯했다. 하지만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조지이스트적 색깔이 짙게 배어 있다는 논란이 다시 제기된 것은 지난달 27일 노 대통령의 발언과 5.4 대책이 나오면서부터다.

◆ 부동산 정책 색깔 논란=헨리 조지는 19세기 후반 경제가 직면한 모순에 주목했다. 산업혁명으로 생산은 획기적으로 늘었는데 빈부 격차는 오히려 확대되고 주기적인 경기 변동으로 노동자나 기업가가 고통을 받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그 원인으로 조지는 생산에 기여하는 바가 전혀 없는 토지 소유자가 과도한 지대를 챙기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조지는 토지 소유자가 받는 지대는 전액 세금으로 환수하고 다른 모든 세금은 면제하면 경제가 훨씬 잘 돌아갈 것이라는 '토지단일세론'을 폈다.

노 대통령의 발언이 조지의 사상을 떠올리게 한다는 논거는 여기에 있다. '토지'라는 단어가 '주택'으로 바뀐 것만 빼고는 조지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는 얘기다.

5.4 대책의 기반시설부담금제나 양도세 실거래가 부과 등도 같은 맥락이다. 부동산 값 상승으로 생긴 이익은 환수하는 게 원칙이란 것이다.

◆ 현실 정책은 엇갈려=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에도 조지의 사상과 배치되는 요소가 적지 않다. 건교부가 강남 아파트의 재건축을 행정규제로 막은 것은 조지이스트 사상과 거리가 멀다. 조지는 토지와 주택을 철저히 구분했다. 자연 그대로의 땅에서 생긴 이익은 환수해야 하지만, 그 위에 집을 새로 짓거나 건물을 개량하는 것은 권장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에 처음 고시한 단독주택 공시가격도 마찬가지다. 조지는 집의 경우 건물과 토지로 나눠 토지에만 세금을 물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부는 거꾸로 두 가지를 합산해 세금을 물리도록 제도를 바꿨다. 특히 개인 자산의 80%가량을 차지하는 주택에 보유세를 점차 많이 물리겠다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또 부동산 가격은 건물과 땅의 가격이 혼재돼 있는데, 건물과 땅의 가격을 분리해 땅에만 세금을 물리는 일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땅 거래가 위축되는 것도 불가피하다. 단순히 땅 보유로 인해 얻는 이익이 없기 때문에 실수요자 이외엔 땅을 보유하려는 사람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세금을 한꺼번에 올린 데 따른 조세 저항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정경민.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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