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월째 텅 빈 지하 애물단지 … 대구시 “범어상가를 어찌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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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 수성구 범어동 범어네거리 지하의 범어상가. 완공된 지 7개월이 지났지만 입점 업소가 없어 상가가 텅 비어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대구시 수성구 범어동 범어네거리. 삼성증권·대신증권·하나은행·우리은행 등 증권사와 은행이 즐비하다. 400여m 북쪽에는 법원과 검찰청이 있다. 주변에는 변호사·법무사사무소와 각종 의원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눈에 띄는 것은 범어네거리 동쪽의 주상복합아파트인 두산위브더제니스다. 52층짜리로 대구지역 아파트 중 두 번째로 높다. 이 일대는 대구 최대의 오피스타운이다.

하지만 범어네거리 아래는 딴판이다. 8일 오후 지하철 2호선 범어역 지하도. 이곳의 상가는 깔끔하게 정리돼 있었다. 점포 벽 사이는 황토색과 연두색 플라스틱 판으로 장식돼 있다. 문과 벽은 유리로 만들어져 있다. 상가 벽 곳곳에는 비상시에 쓸 수 있도록 비상 조명등이 설치됐다. 칸막이 사이 바닥에는 소화기도 놓여 있다. 당장에라도 영업을 할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통행인은 헤아릴 수 있을 정도로 적다. 주민 박성희(52·여)씨는 “지하상가가 너무 썰렁하다”며 “혼자 걸을 땐 무서운 생각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

범어네거리 지하에 있는 범어상가의 모습이다. 이 상가가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완공된 지 7개월이 넘도록 임대가 되지 않아 텅 비어 있기 때문이다.

범어상가는 2006년 11월 착공해 지난 2월 완공됐다. 공사비로 484억원이 들었다. 인근 두산위브더제니스아파트 시공업체인 ㈜해피하제가 지하보도 겸 상가를 만들어 대구시에 기부한 것이다. 해피하제는 2004년 주민 편의를 위해 아파트와 지하철 범어역을 연결하는 지하도를 만들기로 했다. 지하도 양쪽에 상가도 설치하기로 했다. 지하도만 만들면 우범지대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서다. 상가는 범어역 서쪽에서 동쪽 아파트 입구까지 길이 370m·폭 17m의 지하도를 따라 들어서 있다. 점포 수는 72개. 지하도 중앙에는 전시·문화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는 광장 두 곳도 조성돼 있다.

지하상가 관리를 맡은 대구도시철도공사는 올 3월 상가 전체를 운영할 사업자를 공모했다. 공사 측은 당초 상가를 점포별로 임대하려 했지만 경기침체로 여의치 않자 계획을 변경했다. 한 달 뒤 타지역에서 지하상가를 운영하는 한 업체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하지만 이 업체는 경기침체가 장기화하고 상·하수도, 가스 등 시설 설치 비용도 많이 들어 사업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계약을 포기했다.

도시철도공사는 이곳을 고가 상품을 판매하는 상가로 만든다는 방침을 세웠다. 주변이 금융기관과 고급 주상복합아파트 지역이어서 고소득 소비층이 많을 것으로 내다봤다. 하루 유동인구도 1만2000여 명으로 추산했다. 그러나 주변에 백화점이 있는 데다 실제 하루 평균 유동인구도 4500여 명에 지나지 않아 쉽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일반 상가로 만드는 문제도 검토했지만 주변 상인들이 상권 침해를 이유로 반발할 가능성이 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됐다.

이에 따라 대구시는 최근 상가를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쪽으로 방침을 바꾸었다. 김범일 대구시장은 최근 열린 시의회 시정질문 답변에서 “현재 진행 중인 상가 위탁업체 공모를 전면 중단시키겠다”며 “상가를 갤러리 등 문화공간이나 공공시설 등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강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상가의 활용 방안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시는 일부를 공공시설로 활용하고, 나머지는 임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넓은 지하공간을 공공기관 사무실로만 쓰기도 어렵지만 연간 10억원에 육박하는 관리비 부담도 만만찮기 때문이다. 시민이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하거나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사회적 기업을 입주시키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

대구시 김대권 문화예술과장은 “시민의 발길을 끌 수 있는 시설을 유치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를 고려해 활용 방안을 마련할 작정”이라고 밝혔다. 이곳에서 만난 주민 장호경(55·여)씨는 “여성단체 등이 요가교실 등 주부들이 이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면 유용한 공간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홍권삼 기자
사진=프리랜서 공정식


대구 범어상가

- 위치 : 수성구 범어동 범어네거리 지하

- 시설 : 길이 370m·통로 폭 17m(보행로 7m, 상가 10m)

- 출입구 : 7개소(엘리베이터 4대, 에스컬레이터 8대)

- 부설 주차장 : 702㎡(지상)

- 공사기간 : 2006.11∼2010.2

- 사업비 : 484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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