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 2. 안과 바깥 <89>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그는 서른이 훨씬 넘을 때까지 장가를 가지 않고 있어서 아이들은 모두 그의 괴팍한 성격 탓일 거라고, 어느 아가씨가 저 광기를 받아 주겠느냐고 수군거렸다. 그가 담임이 되었던 첫날부터 나와는 악연이 있었다. 나를 다른 아이와 착각하고 큰 아이들만 앉는 맨 뒷자리의 복도 쪽 구석자리에 배정했는데 거기는 그야말로 교실에서 사각지대나 다름없었다. 나중에 내가 중키에다 다른 이름이라는 것도 밝혀졌지만 그는 귀찮았는지 아무 데나 앉으라고 말했다. 그는 내가 몇몇 학생 잡지와 교우지에 소설을 발표한 적이 있다는 것도 알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이른바 '문청'에 대하여 그는 노골적인 적의와 냉소를 드러냈다.

- 나는 거 무슨 글 씁네 하구 책 끼구 다니는 젊은것덜 꼴 보기 싫두만. 거저 연애질이나 하라문 모를까 어디 쓸 데가 있나 말야.

사실 문예반에도 들지 않은 나로서도 듣기가 거북한 노골적인 언사였다. 아마도 그는 대학 시절의 어떤 경험으로 편견이 있는 게 틀림없었다. 한번은 그가 수업 시간에 역시 몽둥이를 들고 예의 그 무차별 질문을 퍼부으며 뒷자리에까지 다가왔다. 그는 내 책상 위에서 교과서 뒤에 감춰놓고 보던 '세계 전후 문학전집'을 발견했다. 당시에 우리 친구들 사이에서는 미국 그리고 유럽 여러 나라와 일본 근간 소설의 번역물이 인기가 있었다. 나는 마침 다사이 오사무의 '기울어진 햇빛'을 읽고 있던 참이었다. 내가 그의 자살과 데카당을 비판했더니 성진이가 내게 쪽지를 보낸 적도 있었다. '웃기지 말구 나오지(주인공) 무덤에 가서 풀이나 매어 줘라' 그래서 내가 역시 쪽지로 답신을 보냈다. '무덤이라면 여기 이왕가 무덤이 훨씬 가깝다' 라고. 선생은 나를 교무실로 따라오라고 했다. 누구나 선생님에게 걸려서 교무실까지 끌려가는 것은 중벌이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머리통이나 큰 놈이 여러 선생님들이 모여있는 교무실에 가서 얼굴이 팔리고 '공매'도 조금씩 더 맞고 하던 게 사나이 체면에 치명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교무실에 가서 자기 자리 옆에 꿇어앉게 하고는 노트 한 장을 죽 찢어주며 '독후감'을 쓰라는 것이었다. 나는 속으로 절대로 쓰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점심 시간이 다 끝나갈 때까지 앉아 있었는데 그가 들여다보더니 왜 안 썼느냐고 물었고 나는 아직 안 읽어서 무슨 내용인지 모른다고 대답했다. 그도 나의 비틀린 심사를 짐작했을 것이다. 마침 문예반 담당인 국어선생이 지나치자 그가 불러세웠다.

- 거저 애들 공부두 안 하게 문예반 같은 거는 왜 만들어 놓구 기래?

국어선생이 나를 보더니 아는 체를 했다.

- 얜 문예반 아닌데. 당신 반 아니야?

사실 담임인 그는 내가 문예반이 아니라는 데 약간 놀란 듯했다. 하여튼 그런 일이 있고 나서 나는 그와 날마다 종례시간에 마주치는 것도 거북했다. 지금도 내 성미가 그렇지만 상대방이 오해를 하면 즉시 해명을 하거나 정면으로 대들지 않고 소통을 피해버린다. 그렇게 본다면 재담꾼으로 알려진 나는 사실은 수줍고 내향적인 데가 더 많다는 얘기다.

그림=민정기
글씨=여태명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