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 사업 의혹] "8000만원 입 맞추자" 녹취록 확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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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일 이광재 의원의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이 전격적으로 실시됐다. 김형수 기자

철도공사(옛 철도청)의 러시아 유전개발 의혹 사건(오일 게이트) 수사가 열린우리당 이광재 의원 등 정치권 인사와 청와대 실무진 쪽으로 향하고 있다.

전대월 하이앤드 대표가 "이 의원 측근에게 지난해 총선 자금 8000만원을 지원했다"고 진술하고,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실 김경식 행정관이 지난해 8월 유전사업 내용을 보고받았다는 것이 도화선이다.

검찰 관계자는 9일 "현재 정치권 인사의 개입설 등 각종 소문이 나돌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 "철저한 수사를 통해 의혹의 초점이 된 인물들의 개입여부를 가려내겠다"고 밝혔다.

◆ 이광재 의원 겨누나=검찰은 이날 "이 의원은 현재로선 참고인 신분이며 이 의원의 총선참모였던 지모(50)씨가 받은 돈이 어디로 흘러갔는지 등 증거 확보를 위해 압수수색을 했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이 의원 선거운동원이던 지씨가 전씨에게서 돈을 받았으나 이 의원에게 전달한 흔적은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전씨도 "지씨를 통해 돈을 건넸으나 이 의원에게 직접 주지는 않았다"라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로서는 이 의원에게 특별한 혐의점을 찾지 못한 상태다.

검찰은 현재 지씨가 전씨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사실을 이 의원이 알았는지, 지씨가 이 의원에게 유전사업을 설명하고 도움을 주자고 건의했는지를 집중적으로 캐고 있다.

문제의 돈을 지씨가 중간에서 '배달사고'를 냈을 경우 이 의원은 큰 타격이 없다. 반면 지씨가 이 의원에게 돈을 받은 사실을 보고하고 선거자금으로 썼을 경우 지씨뿐 아니라 이 의원도 사법처리를 피해가기 어렵다. 검찰은 문제의 8000만원과 관련, 지씨가 전씨에게 "개인적으로 빌린 것으로 입을 맞추자"고 한 점에 주목하고 있다.

전씨는 검찰에서 "지난해 6월 이 의원을 직접 만나 유전사업 지원을 부탁하기에 앞서 지씨를 통해 (이 의원 측에) 1주일에 1~2차례씩 유전사업을 얘기했다"고 진술했다. 이 의원을 보고 돈을 건넸다는 얘기다. 검찰은 이 진술의 진위를 밝히는 데 수사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의원은 지난해 6월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로 찾아온 전씨에게 자신의 후원회장인 이기명씨를 통해 알게 된 허문석 박사를 소개시켜 줬다.

이 의원은 그 뒤 전씨를 한두 차례 더 만났다고 한다. 또 지난해 11월 신광순 당시 철도공사 사장이 찾아와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하자 "철도공사가 왜 그런 사업을 하느냐"고 거절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왕 전 본부장이 8월 12일 철도공사 내부회의에서 "유전사업은 이광재 의원의 제안"이라고 말했고, 철도공사의 '러시아 유전개발 프로젝트'라는 문건에서도 '업무총괄-이광재 산자부(국회 산자위의 오기) 위원'등의 표현이 나온다. 전.허씨를 알고 지낸 부분과 함께 이 의원에게 이번 사건 관련 의혹이 모아지는 이유다.

◆ 청와대 실무자만 알았나=러시아 유전회사를 인수할 경우 지난해 한-러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부가 조인식을 거행하기로 했다는 철도공사의 문건이 나온 뒤 청와대 개입 의혹이 제기돼 왔다.

그러나 청와대는 이런 의혹을 전면 부인해 왔다. 지난달 22일 "국정상황실이 지난해 11월 초 정부기관의 정보보고를 통해 관련 사실을 보고받았으나 11월 중순까지 경위를 확인한 뒤 자체 종결 처리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청와대 김경식 행정관이 왕 전 본부장에게서 지난해 8월 유전개발 사업과 관련해 보고를 받은 것으로 드러나면서 청와대의 설명이 설득력을 잃고 있다.

검찰은 왕 전 본부장이 보고한 8월 31일이 철도공사가 러시아 측과 계약(9월 3일)하기 직전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9월 20~23일)을 앞둔 시점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왕 전 본부장이 전대월씨.허문석 박사와 함께 대통령 방러 기간에 맞춰 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조강수.문병주 기자 <pinejo@joongang.co.kr>
사진=김형수 기자 <kimh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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