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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 품은 압박 벽에 패싱축구 실험 막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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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조광래 감독이 경기가 안 풀리자 답답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이영목 기자]

조광래팀은 오밀조밀한 패싱 게임을 고집했다. 공격 성향이 강했던 나이지리아전(8월 11일, 2-1 승)에서는 먹혔다. 하지만 이란전에서는 아니었다. 이란의 밀집수비를 뚫어 줄 시원한 ‘한 방’이 없었다. 상대에 따라 다른 전술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얻은 경기였다.

한국이 7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축구 국가대표 평가전에서 이란에 0-1로 졌다. 2005년 10월 이후 시작된 이란전 무승 기록이 6경기(4무2패)로 늘어났다. 이란과 역대 전적에서도 8승7무9패로 열세에 놓였다. 내년 1월 아시안컵 우승을 노리는 한국으로서는 ‘아시안컵 전초전’의 패배가 뼈아프지만 한편으로는 변화의 출발점으로 삼을 수 있는 계기였다.

◆불완전한 ‘이청용 시프트’=조광래 감독은 이란전을 앞두고 “이청용(볼턴)의 공격력을 극대화하겠다”며 측면 공격수 이청용을 공격 때 박주영(모나코)과 투톱으로 세우는 ‘이청용 시프트’를 예고했다. 전반 시작과 함께 이 전술이 빛을 발하는 듯했다. 전반 1분 이청용은 박주영과 패스를 주고받으며 단번에 미드필드에서 이란 문전까지 올라갔고 날카로운 슈팅까지 날렸다. 이란 골키퍼의 선방에 걸렸지만 둘의 조합은 위력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경기 전체를 통틀어 둘의 호흡이 제대로 들어맞은 장면은 많지 않았다.

한국은 이란의 밀집수비 앞에서 패스를 고집했다. 슈팅 기회를 찾지 못한 채 공을 돌렸다. 그러다 공을 뺏기곤 했다. 전반 32분 윤빛가람(경남)에서 시작해 박주영-최효진(서울)을 거쳐 박지성(맨유)의 슈팅까지 이어진 장면을 제외하곤 소득 없고 지루한 공격이 이어졌다. 조 감독은 결국 후반 34분 이청용을 빼고 석현준(아약스)을 투입, ‘이청용 시프트’를 중단했다.

김대길 KBSN 해설위원은 “미드필드에서 패싱 게임을 펼치며 아기자기한 모습을 보여 줬던 나이지리아전 때와는 완전히 달랐다. 상대의 강한 압박에 대한 적응력도 길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란 공격수 마수드 쇼자에이(오른쪽)가 0-0으로 팽팽하던 전반 34분 한국 골키퍼 정성룡의 수비를 제치고 선제 결승골을 터뜨리고 있다. 수비 진영에서 한순간 방심으로 인한 실수가 뼈아픈 실점으로 이어졌다. [연합뉴스]

◆실점 빌미 된 치명적 실수=어이없는 실수가 실점으로 연결됐다. 전반 34분 한국은 이란 진영에서 프리킥을 얻었다. 수비수 이정수(알사드)와 홍정호(제주)는 헤딩슛을 노리고 이란 문전에 들어가 있었다. 한국의 프리킥을 이란 수비수가 먼저 걷어냈다. 공을 잡은 이영표(알힐랄)는 후방에 혼자 남아 있던 김영권(도쿄)에게 백패스를 했는데 짧았다. 달려든 건 이란의 테이모리안과 쇼자에이였다. 한국 수비수 1명에 이란 공격수 2명. 테이모리안의 패스를 받은 쇼자에이의 슈팅이 한국 골 네트를 갈랐다.

후반 시작 무렵에도 비슷한 장면이 나왔다. 하프타임 때 윤빛가람과 교체 투입된 김정우(광주)가 한국 진영 아크 정면에서 볼 컨트롤 실수를 했다. 곧바로 달려든 이란 공격수는 공을 잡아 슈팅까지 연결했다. 슈팅이 다행히도 골키퍼 정성룡(성남)의 다리에 걸려 실점은 면했지만 추가골을 내줄 뻔한 상황이었다. 조 감독은 김정우를 후반 21분 조영철(니가타)로 다시 교체했다.

실수를 연발한 선배들과 달리 스리백 수비라인에 투입된 김영권·홍정호 등 어린 선수들은 분전했다. 다만 이들을 보조하기 위해 이영표·최효진 등 좌우 윙백이 수비에 많이 가담하면서 나이지리아전 때와 같은 활발한 오버래핑을 보여 주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장혜수 기자

◆축구 국가대표 평가전(7일)

한국 0-1 이란

<골> 쇼자에이(전34·이란)

양팀 감독의 말

미드필드서 주도권 내 줘
젊은 공격수들 더 노력해야

한국 조광래 감독

좋은 내용의 경기를 보여주려 했는데 경기장 사정이 너무 좋지 않았다. 우리가 생각하는 패싱 게임을 하지 못한 게 아쉽다. 스리백 수비가 무너지지 않았다. 앞으로 조직력을 강화한다면 수비는 큰 문제가 없을 걸로 본다.

2014년 월드컵을 준비해야 하는데 젊은 수비수가 나오지 않으면 대표팀은 약해진다. 다소 무리를 하면서도 홍정호·김영권을 투입했고 앞으로도 적극 투입할 것이다. 현대축구는 미드필드에서의 압박이 심하다. 어려운 상황을 만들어 놓고 훈련을 해야만 상대를 무너뜨릴 수 있다. 윤빛가람·기성용의 전반전 플레이는 좋았다. 미드필드 싸움에서 밀리지 않았다. 다음 달 한-일전을 대비해 후반전에 김정우·김두현 카드를 꺼냈는데 김정우의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미드필드에서 두 선수의 간격이 벌어지면서 주도권을 내줬다.

오늘의 전술 패턴과 나이지리아전의 패턴 두 가지를 가지고 아시안컵에 대비하겠다. 대표팀 문은 항상 열려 있다. 이승렬 등 여러 공격수를 보고 있다. 이번에 안 뽑은 이유는 팀에서 더 노력하길 바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데얀(서울)은 정말 열심히 한다. 움직임도 많고 연구도 많이 한다. 문전에서 날카로운 플레이를 한다. 이런 플레이를 한다면 언제든 대표로 뽑는다.

뒷공간 파고든 게 승리 요인
한국, 골 넣을 공격수 찾아야

이란 고트비 감독

우리는 4-3-3 전술이었다. 한 명의 자유로운 역할을 가진 선수를 적극 활용하려 했다. 한국은 양쪽 윙백의 공격 가담이 적극적이다. 한국이 공격할 때 생기는 뒷공간을 노렸고 이것이 주효했다. 서울에서 한국을 이기는 건 매우 어렵다. 오늘 승리로 이란은 아시아 최고 팀이 될 자신감을 얻었다.

지난달 열린 한국-나이지리아전을 DVD로 봤다. 한국의 젊은 선수들은 자신만만해 보였다. 조광래 감독은 토털 사커를 강조하며 세계축구의 조류를 따라가려 한다. 이런 자세를 앞으로도 잃지 않기를 바란다.

오늘 우리는 더 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중국을 거쳐 22시간 동안 비행하고 입국해 제 컨디션이 아니었다.

아픈 이야기를 하자면 한국은 골을 넣을 공격수를 찾아야 한다. 조직력도 문제다. 한국은 선수들이 포지션을 자주 바꾸면서 너무 많이 뛰었다. 때로는 특별한 이유 없이 선수들이 위치를 바꾸면서 에너지를 낭비했다.

그러면서 볼을 잃으면 역습을 허용했다. 7명의 선수가 공격하면서 볼을 뺏기면 나머지 3명이 위기를 맞는다. 어떤 때는 기회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한국은 한국축구를 자랑스러워해야 한다. 한국은 최고의 성과를 내 왔다. 이제 한 단계 상승을 준비하고 있다.


김호의 관전평

문전서 파괴력 떨어져
미드필드서 리더 있어야

파괴력 있는 선수가 없다 보니 공격이 평범했다.

한국 축구는 옷을 갈아입는 중이다. 젊고 새로운 선수들을 실험하고 있다. 기술 있는 선수들을 선발했지만 힘이 부족했다. 스피드와 힘, 기술이 조화를 이룰 때 좋은 축구를 할 수 있다.

박주영과 이청용은 기술이 뛰어난 선수이지만 파괴력은 떨어진다. 이청용은 문전 중앙에 있을 때보다 측면에서 기회를 만들 때 좋은 모습을 보였다. 아직 최전방 공격수 자리가 익숙하지 않은 것 같다. 경험을 더 해야 한다. 파괴력 있는 파트너가 있다면 이청용이나 박주영처럼 기술을 갖춘 선수들이 쉽게 플레이할 수 있다.

미드필드 지역에서도 힘 있게 경기 전체를 리드하는 선수가 보이지 않았다. 노련함이 부족했다. 수비진 역시 아직 완성돼 있지 않다. 조금 더 발을 맞추며 서로에게 익숙해져야 할 것이다.

좁은 공간에 모여 있다가 퍼져 나가는 속도는 더 빨라져야 한다. 득점으로 연결되지는 않았지만 전반전 두세 차례 좋은 기회가 있었다. 그런 장면이 더 많아져야 한다.

경기는 졌지만 장기적인 안목에서 팀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우리 목표는 월드컵이지 경기마다 이기는 것이 아니다. 선수들이 세계 무대를 향해 앞으로 나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경기를 많이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란은 남아공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한 뒤 많은 준비를 한 것으로 보인다. 강한 힘을 앞세워 한국을 압박했다. 압신 고트비 이란 감독은 꾀가 많은 사람이다. 선수층에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앞으로 더 강해질 것이다. 이란뿐 아니라 다른 중동 국가들도 그럴 것이다.

다음 달 만나는 일본도 감독이 바뀌면서 새로운 모습으로 단장해 한국에 올 것이다. 쉽지 않겠지만 한-일전을 바라보는 국민 정서를 고려한다면 대표팀에 충분한 시간을 줄 필요가 있다. 짜임새가 만들어지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본지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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