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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 딸’ 한 사람 뽑으려고 특채 전과정 불법·편법·특혜 총동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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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생각을 해 보세요.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특혜를 줄 수 있겠어요.”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언론을 통해 딸 현선(35)씨의 특채 특혜 의혹이 제기된 다음 날인 3일 출근길에 한 말이다. “장관 딸이기에 더 엄격하게 한 걸로 보고받았다”고 특혜 의혹을 일축하기도 했다. 그러나 행정안전부의 특별인사감사 결과 모든 의혹은 ‘사실’로 드러났다. 조윤명 행정안전부 인사실장은 6일 “장관 딸을 특채로 뽑기 위해 시험위원을 선정하고 심사하는 과정에서 법을 위반하는 등 시험 전반에 걸쳐 공정성·투명성을 심각하게 훼손했다”고 밝혔다. 맹형규 행정안전부 장관은 "어물전 망신 꼴뚜기가 시킨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에 앞서 맹형규 장관으로부터 감사 결과를 보고받고 “관련자들을 엄중 문책하라”는 취지로 지시했다고 김희정 청와대 대변인이 6일 전했다. 이에 따라 행안부는 이번 특혜 사건 관련자를 중징계하는 등 엄중 문책한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외교부에는 기관 경고를 할 계획이다.

감사 결과에 따르면 당시 특채 전형 과정에서 서류와 면접시험위원으로 참여한 한충희 외교부 인사기획관은 현선씨가 ‘장관 딸’임을 알고 있었다. 공무원 임용시험령 13조에 따르면 응시자와 안면이 있거나 특수 관계가 있는 등 ‘제척사유’가 있는 자는 시험위원이 될 수 없다. 또 시험위원을 위촉할 때 외교부 장관의 결재를 받아야 하지만 이 과정도 생략됐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6일 청사를 떠나고 있다. 유 장관은 국장회의에서 “본의 아니게 물의가 야기돼 조직에 큰 부담을 안겨줬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심사 과정도 석연치 않다. 5명의 면접위원 중 한 인사기획관을 포함한 외교부 내부위원 2명은 현선씨에게 각각 19점의 면접 점수를 줬다. 만점(20점)에 가까운 점수다. 교수인 3명의 외부위원은 차순위자에게 현선씨보다 총점 2점이 높은 점수를 줬다. 그러나 내부위원이 준 ‘고득점’ 덕에 현선씨는 차순위자보다 7점이나 높은 점수로 합격했다. 조윤명 인사실장은 “심사회의 때 내부위원이 ‘실제 근무 경험이 필요하다’고 강조해 외교부에 근무한 적이 있는 현선씨로 분위기를 몰아가기도 했다”고 말했다.

시험 절차상에서도 문제점은 드러났다. 외교부는 특채 재공고 후 26일이 지난 8월 11일 접수를 마감했다. 10일은 TEPS 성적표가 나오는 날이었다. 유효기간 만료로 영어 성적표가 없던 현선씨는 이날 발표된 성적표(923점)를 서류로 제출했다. 유효기간이 만료된 이전 성적표보다 56점 오른 성적으로, 응시자 중 최고 점수를 기록했다.

응시자격 조건도 들쭉날쭉했다. 외교부는 이전 특채에서는 텝스와 토플을 영어시험 성적으로 인정했지만, 이번 특채에서는 텝스만 인정했다. 외국과의 법적 분쟁을 가리는 통상 전문가를 뽑는 시험인데 변호사 자격은 제외했다. 대신 ‘석사 후 2년 경력자’를 추가해 모든 상황을 현선씨에게 유리하도록 몰아갔다는 지적이다.

한은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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