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타운 8년 … 공사 시작된 곳 10%도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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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서울 청계천 상류 청계9가 옆에는 약 10만㎡의 땅이 9개월째 공터로 방치돼 있다. 이곳은 2002년 은평·길음지구와 함께 뉴타운 시범지구로 지정된 개발구역이다.

지난해 말 주민들이 이주하고 900여 채의 노후된 연립·다세대 주택이 철거되면서 사업 착공을 눈앞에 뒀다. 하지만 조합원 4명이 조합설립 인가 확인 소송을 냈고 1월 조합이 패소하면서 뉴타운 사업은 중단됐다. 이종섭 조합장은 “900여 가구는 시공사에서 받은 이주비로 근처에서 전세를 산다”며 “사업이 늦어져 한 달에 약 10억원씩 발생하는 이자가 조합원 부담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2002년 21세기형 고품질의 주거공간을 공급하겠다며 시작한 뉴타운 사업이 지지부진하다. 서울시는 2002년 3곳의 시범뉴타운을 선정한 데 이어 1년 뒤 25개 구에서 신청을 받아 12곳의 2차 뉴타운 사업지를 결정했다. 또 뉴타운 사업 보완책으로 뉴타운 대상에서 빠진 8곳을 균형발전시키겠다며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했다.

2002~2007년 이렇게 서울시내 35곳에 뉴타운 사업시행 대상 구역 305개가 선정됐다. 면적이 2733만9384㎡(약 828만 평)에 달한다.

하지만 305개의 뉴타운 사업시행 대상 구역 중 현재 공사가 시작된 곳은 30개로 10%가 되지 않는다. 뉴타운 사업이 준공된 구역은 15개로 전체의 4.9%에 그친다. 뉴타운 사업이 이처럼 속도를 못 내는 것은 부동산 경기 침체와 주민들 간의 갈등 때문이다. 또 주민 의사와 관계없이 구청이나 정치적 입김에 따라 과도하게 지정된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시의 한 관계자는 “뉴타운 사업은 낡은 도심을 재생시킨다는 본래 취지와 맞지 않게 지정이 남발돼 결과적으로 사업이 미궁에 빠진 곳이 많이 있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소송이 줄을 잇고 있다. 305개의 뉴타운 사업 시행 구역 중 30여 구역에서 주민들 간에 조합설립 인가 절차나 새 아파트의 평형과 동·호수 배정 등을 둘러싼 소송이 벌어지고 있다. 또 이 중에는 해당 구청이나 서울시를 대상으로 뉴타운 지정 자체를 문제 삼는 행정소송도 13건이 진행 중이다.

왕십리 1구역 주변의 한 부동산 중개인은 “뉴타운 지정 당시 집값이 크게 오를 것으로 기대했던 주민들이 빚쟁이로 전락한 것 아니냐며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뉴타운 사업이 제 속도를 찾기는 당분간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다. ㈜부동산써브의 함영진 부동산연구실장은 “주택시장 침체로 분양시장이 여의치 않아 조합원들의 추가 분담금이 증가할 수 있어 사업 속도를 내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그러나 현재의 뉴타운 사업 추진 속도가 느리지 않다는 입장이다. 김명용 서울시 뉴타운사업 1 담당관은 “뉴타운은 민간 개발과 달리 한꺼번에 넓은 지역을 개발한다”며 “좁은 지역을 개발하는 데도 10년가량 걸리는데 8년 남짓 된 뉴타운의 진척 상황을 따지는 것은 아직 이르다”고 말했다.

장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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