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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하기 좋은 나라 만드는 게 기본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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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이로 인해 이제는 연봉 5000만원이 넘는 사람들도 한 달에 단돈 10만원을 문화비에 지출할 여유가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그러다 보니 미래산업이라는 문화 콘텐트 산업의 원동력이 될 수요 기반이 취약해지고 있다. 해외 조기유학 열풍을 일으켜 가족해체의 원인이 된 것도 한편으로는 사교육비에서 파생된 문제다.

올라도 걱정, 내려도 걱정인 집값 문제도 그렇다. 정권마다 필요에 따라 건설경기를 부양 또는 조정의 대상으로 삼아 일관성 없는 부동산 정책을 펼쳐오고는, 이제는 집값 급락이 경제에 부담을 줄까 싶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촌극을 연출하고 있다.

소위 ‘떼거리법’과 ‘국민정서법’에 굴복해온 것도 문제다. 법 해석과 정책의 일관성이 없다 보니, 장기적인 중소기업 발전대책이나 신규 미래산업 육성책 하나 제대로 실행하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 우리는 자영업자의 비중이 가장 높다. 서비스 산업에 미래를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제조업 중심의 우대 관행이 여전하다. 금융권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공적자금까지 투입해 살려놓은 금융권은 여전히 외국계 금융회사를 벤치마킹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남들 다 가는 길로만 가면 책임은 모면할 수 있다는 보신주의와 한탕주의 풍조도 남아 있다. 대기업은 대기업대로 중소기업과의 상생보다는 중소기업들의 희생 위에 자기만 살아남겠다는 태도가 여전하다. 하지만 거시환경은 크게 달라져 있다. 우리는 중국을 비롯한 다른 개발도상국과 일본·미국 등 선진국 사이에 놓여 있다.

이럴 때일수록 일자리를 만드는 창업자가 존경받고 지원받는 사회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 동네에서 작은 상점을 하더라도 일자리를 만드는 사람이 존경받는 그런 사회 말이다. 대기업도 중소기업을 비롯해 누구와도 상생하겠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 이를 실천하는 대기업을 중점적으로 지원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 누가 뭐래도 경제활동의 밑거름은 중소기업이다. 금융권도 담보물 중심의 대출 관행에서 벗어나 고도화된 신용평가를 통해 미래산업이자 자신들의 장래 수요처인 창업기업과 중소기업을 육성해야 한다.

민주화를 더디게 했다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경제발전 측면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는 지도자와 정권, 그리고 기업가를 가진 적이 우리에게도 있다. 경제발전을 위해 모든 걸 참아내는 국민성이 그 밑거름이 됐음은 물론이다. 1960~70년대 철강·자동차·전자 산업 등에 뛰어들어 성공을 일궈낸 것도 일관된 정책 수립과 집행을 해낸 지혜로움과 추진력 덕분이다.

지금 우리도 그 경험을 바탕으로 기존 방식과는 달라진 ‘제3의 길’을 찾아내야 한다. 압축성장으로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기적을 일궈낸 우리가 다시 한번 더 도약하는 길은 바로 기본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기본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 만들기다. 부가가치를 만드는 사업을 우대하는 게 첫걸음이다. 공정한 경쟁과 평가가 이뤄지는 게 그 기본이다. 평가의 결과가 차별이 아니라 발전의 기반으로 재사용되는 사회를 구축하면 된다.

이런 기본을 일구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우리의 일관된 의지’다. 국민 모두 이런 의지를 가지고 모든 정치·경제 활동을 감시해야 한다. 우리에게 새로운 선택과 심판의 기회는 선거가 있는 4~5년마다 돌아온다. 문제는 어떤 정권이 들어서느냐가 아니라, 정권이 바뀌더라도 변치 않을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공감대가 우리 사회에 있느냐’는 것이다.

이철형 와인나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