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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서스 맞먹는 정숙성 수입차 뺨치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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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호 27면

GM대우의 새 준대형차 알페온은 소리 없는 바람 같았다. 흥건히 젖은 도로를 아랑곳하지 않고 바깥세상과 담을 쌓은 듯 빼어난 정숙성을 자랑했다.

지난 9월 1일, 제주도에서 GM대우 알페온 시승회가 열렸다. 마침 태풍 곤파스가 다가왔다. 강한 비바람이 몰아쳤다. 시승엔 최악의 조건이었는데, 결과적으론 도움이 됐다. 극한 상황 속에서 알페온의 장점이 오히려 더 도드라졌기 때문이다. 알페온은 흥건히 젖은 노면에 개의치 않고 안정적으로 달렸고, 바깥세상과 벽을 쌓은 것처럼 빼어난 정숙성을 뽐냈다.

GM대우 알페온 타 보니

알페온은 GM대우의 새로운 준대형 차다. 국내엔 이번에 처음 출시됐지만 안팎 디자인이나 성능 등 구체적인 정보는 일찌감치 알려졌다. 지난해부터 북미와 중국에서 뷰익 라크로스로 판매 중인 까닭이다. GM대우엔 알페온 말고도 해외에서 GM 계열의 다른 브랜드로 팔리는 모델이 많다. 마티즈 크리에이티브와 라세티 프리미어, 젠트라 X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들 모델은 국내에서 베일을 벗었다. 반면 알페온은 해외에서 먼저 데뷔했다. 따라서 엠블럼을 바꿔 단 수입차란 느낌이 짙다. GM대우는 이런 사실을 강조하고 싶어 하지 않는 눈치다. 이날 함께 진행된 신차 발표회에서 GM대우의 마이크 아키몬 사장은 “알페온은 국내 소비자를 겨냥해 국내에서 생산해 국내에서만 파는 차종”이란 사실을 강조했다.

화려한 실내를 자랑하는 알페온의 내부 모습.

뷰익 라크로스란 예고편을 익히 본 터였지만 호기심은 여전했다. 국내 소비자의 취향에 맞게 어떤 부분이 얼마나 바뀌었을지 궁금했다. 엔지니어링을 총괄하는 손동연 부사장은 “국내 소비자들이 중시하는 승차감을 고려해 서스펜션을 꼼꼼히 다듬었다”고 밝혔다. 디자인을 지휘한 김태완 부사장은 “피아노 블랙 패널 등 마감재를 세심히 골랐다”고 설명했다.

알페온의 차체 길이는 대형차의 기준으로 꼽는 5m에서 딱 5㎜ 빠진다. 길이뿐 아니라 너비 또한 동급에서 가장 크다. 그런데 실제로 보면 그렇게 커 보이지 않는다. 라이벌로 손꼽히는 기아 K7과 나란히 세워보면, 수치상 더 크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그건 디자인 때문이다. 차체 각 모서리 끝단을 매끄럽게 오므렸다. 그래서 실제보다 작아 보인다.

차체는 미끈하다. 납작한 윈도가 날렵한 느낌을 더한다. 도어와 윈도가 맞닿는 벨트라인을 한껏 끌어올린 덕분이다. 타이어 주위의 철판은 거우듬하게 부풀렸다. 차체 옆면엔 완만하게 떨어지다 뒷문 즈음에 팍 솟아오르는 라인을 돋을새김했다. 이 때문에 히프 부위가 유독 빵빵해 보인다. 김태완 부사장은 “1950년대의 뷰익을 모티프로 삼았다”고 설명했다.

디자인은 담백하고 깔끔하다. 장식을 위한 기교는 실제론 막힌 보닛의 방열구멍 정도다. 각 철판은 치밀하게 맞물렸다. 정교한 조립품질이 돋보인다. 헤드램프는 스티어링 휠 꺾는 방향을 비춘다. 테일램프엔 화사하고 또렷한 LED를 심었다. 라크로스와 다른 부분은 별로 없다. 폭포수의 이미지를 담았다는 라디에이터 그릴과 알페온 전용 엠블럼 정도의 차이다.

치장을 아낀 겉모습과 달리 실내는 화려하다. 대시보드와 센터페시아가 운전석과 동반석을 완만하게 에워쌌다. 포근히 안겨 있는 기분이다. 수평과 수직의 개념은 자취를 감췄다. 구성이 입체적이다. 계기판은 우뚝 솟았다. 윈도 스위치는 도어 트림의 곡면에 따라 비스듬히 누웠다. 충분한 공간을 갖췄지만, 시각적으로는 좁아 보인다. 겉모습과 비슷한 경우다.

감성 품질은 흠잡을 데 없다. 플라스틱은 은은한 광택과 적당한 쿠션을 머금었다. 원가 절감을 위해 딱딱한 플라스틱을 야금야금 늘려가는 현대·기아차와 대조적이다. 정보창과 내비게이션의 그래픽은 눈이 아릿할 만큼 정교하다. 시트는 몸을 충분히 감싸는 데다 쿠션이 차지다. 도어엔 고무 몰딩을 겹겹이 씌웠고, 보닛 안쪽엔 방석만큼 두꺼운 방음재를 덧댔다.

맞춤복처럼 꼭 맞는 앞좌석 공간과 달리 뒷좌석은 넉넉하다. 안쪽 내장재를 깊이 파 머리공간도 충분히 확보했다. 앞좌석엔 통풍 기능을 갖췄다. 바람을 뿜어내지 않고 빨아들이는 방식이어서 눈길을 끈다. 에어백은 최대 8개까지 담을 수 있다. 차체의 70%는 고장력 및 초고장력 강판으로 짰다. 그 결과 북미의 충돌테스트에서 항목별 만점을 두루 챙겼다.

알페온의 엔진은 V6 3.0L 가솔린. 직분사와 가변밸브로 효율을 높인 최신 버전이다. 최고출력은 263마력으로 동급에서 가장 높다. 변속기는 자동 6단. 오는 10월엔 185마력을 내는 2.4L 엔진이 추가된다. 시동은 버튼만 눌러서 걸 수 있다. GM대우의 자랑처럼, 정숙성은 대단했다. 타코미터를 자꾸 살피게 될 만큼, 엔진은 잔잔하고 조용히 회전했다.

태풍을 뚫고 제주도의 해안도로를 달릴 때조차 실내엔 까마득한 정적만 맴돌았다. 아스팔트에 고인 물을 치고 지나는 소리마저 아득히 멀게만 느껴졌다. 가속은 가슴 철렁할 정도까진 아니지만 충분히 시원시원하다. 워낙 조용해서 속도감이 더디게 느껴질 뿐이다. 물론 실제로 더딘 것도 있었다. 가속 초기 엔진의 반응과 변속기의 움직임은 기대보다 굼떴다.

알페온의 전반적인 운전감각은 세련됐다. 서스펜션이 대표적이다. 평소엔 부드러운 승차감을 유지하되 코너에서 기울 땐 엄격하게 버텼다. 요철에서 오는 충격과 진동을 흔적 없이 삼켰다. 스티어링 조작에 따른 앞머리의 반응 또한 민첩했다. 그래서 실제보다 작은 차를 모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었다. 사소한 움직임마저 촘촘한 필터를 거친 느낌이다.

GM대우 알페온은 해외에서 호평받은 그대로였다. 품질과 성능에서 기존 국산차의 수준을 한 단계 넘어섰다. 동급의 수입차와 정면승부를 벌일 자격이 충분하다. 국내 기술이라고 자랑할 만한 게 없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알페온 3.0의 가격은 3362만~4087만원. 라이벌로는 기아 K7과 현대 제네시스, 그랜저 후속이 손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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