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최우석 칼럼

인사 때 따져봐야 할 세 가지 값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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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교육부총리를 임명하여 인사 파문을 겨우 봉합했다. 역대 정권이 "인사가 만사"라고 입버릇처럼 뇌지만 인사에 죽을 쑤기는 여전하다. 오히려 더 심해지는 것 같다. 물론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도 있다. 옛날 장기 독재정권 때는 시간이 충분하니 장기 포석이 가능하고 또 검증이 까다롭지 않아 큰 탈 없이 넘어갈 수 있었다. 5년 단임인 지금은 시간이 급한 데다 말들이 많다. 그걸 감안하더라도 인사가 너무 매끄럽지 못하다. 왜 이럴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핵심은 지금 인사와 관련된 세 가지 값에 혼돈과 착오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첫째가 자리에 대한 값이다. 이 세상 모든 자리엔 값이 있다. 단지 서열이나 연봉뿐 아니라 그 자리가 지니고 있는 고유의 값이다. 이 값은 수시로 변한다. 인사를 할 땐 이 값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이 자릿값은 정가표가 없고 오히려 암묵지(暗默知)로 통용될 때가 많다. 수평적 정권 교체가 되거나 비주류가 주류로 들어올 때 잘 몰라 혼란을 빚기 쉽다. 때로는 부총리가 총리보다, 핵심 국장이 장관보다 더 비쌀 수도 있다. 공정거래위원장 자리도 호황 때와 불황 때 역할이 다르므로 당연히 값이 달라진다. 또 자리는 높지만 적당히 줘도 괜찮은 자리가 있고 절대 줘서는 안 되는 자리가 있다. 그걸 잘 구별해야 한다.

정권을 잡으면 어차피 신세를 갚아야 할 사람이 많다. 그 사람들에게 적당히 자리를 줘야 하는데 그때 자리를 잘 골라야 한다. 필요하면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나라의 기본골격은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 대우하는 자리와 일을 하는 자리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 또 내세우는 정책과 인사가 같이 가야 한다. 그런 점에서 참여정부는 아직 서툴다. 열심히 한다고 하지만 암묵지가 아무래도 모자라기 때문일 것이다.

둘째가 사람에 대한 값이다. 사람이란 모두 값을 가지고 있다. 이 값도 자꾸 변한다. 이 값을 잘못 매기면 큰 미스매치(mis-match)가 일어난다. 화려한 경력과 일하는 능력은 다른 것이다. 겉으로는 번쩍번쩍 빛나는 황금도끼 같은 사람들이 많지만 막상 황금도끼로는 나무를 쪼갤 수가 없다. 또 민주화 운동이나 투쟁 경력과 일을 쳐내는 능력은 다른 것이다. 고매한 인격과 흙탕물에 들어가야 하는 자리는 구별해 써야 한다. 사람의 값을 알려면 여러 각도에서 보아야 하는데 비교 범위가 좁으면 잘못 알기 쉽다. 아마추어로선 일류지만 프로로선 미흡하다는 평가가 나올 수 있다.

같은 경제부총리라도 경기 과열을 진정시켜야 할 때와 경기를 일으켜야 할 때는 필요한 유형이 다르다. 경제전문가도 각기 특장(特長)이 있다. 그것을 정확히 알아 써야 한다.

요즘 코드인사라고 욕먹는 것은 코드에 맞는 사람을 쓰기 때문이 아니다. 사람값을 제대로 모르기 때문에 수준에 안 맞는 사람을 태연히 쓰기 때문이다. 문제는 코드가 아니라 수준이다.

셋째는 사람들이 제값을 잘 모르는 것이다. 원래 사람들은 자기 값을 시장값보다 높게 생각하게 마련이지만 요즘은 정도가 심한 편이다. 거의 버블 수준이다. 한 사람이 비싸게 팔리면 자기도 그렇게 팔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이론이나 훈수 실력을 실제 일하는 능력으로 오판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직접 현장에 뛰어들어 일해 보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들은 논리정연하고 사명감도 높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감동하기 쉽다. 청와대 인사팀을 아무리 보강한들 집단 버블 상태에 있는 이들을 어떻게 제어하고 골라낼 것인가. 그러나 밖에서 훈수하는 것 하고 실제 해 보는 것은 다르다. 실패하기 전에는 모르기 쉽다.

자신의 용량이 어느 정도인지, 또 말썽 없이 넘어갈 수 있을지는 스스로 가장 잘 알 것이다. 따라서 감당할 수 없는 자리는 스스로 사양하는 것이 가장 좋은 길인데 그런 염치들이 적은 것 같다. 인사가 잘 되려면 잘 고르는 것 못지않게 받는 측의 자세와 분위기도 중요할 것이다.

요즘 자릿값은 너무 싼 것 같고 사람값이나 스스로 매기는 값은 턱없이 높으니 인사소동은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최우석 삼성경제연구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