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내 생각은…

역도산·김일 되새겨야 할 이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지난 연말의 어느 날, 서울의 한 병원에서 병마와 싸우고 있는 왕년의 프로 레슬러 김일 선생님을 찾았다. 역도산 관련 책을 번역하는 내내 김 선생님을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기에 출간된 번역서를 드리고 병 문안도 하자는 뜻이었다. 하지만 내심 그를 만나고 싶었던 진짜 이유는 그가 나의 뇌리 속에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인물로 각인돼 있었기 때문이다.

한 시간 남짓 나눈 대화에서 내 가슴에 화살처럼 꽂혔던 말은 "만일 역도산 선생이 살아 계시면 남과 북을 위해 가교 역할을 충분히 하셨을 것이다"였다.

역도산과 김일은 일본과 한국의 현대사에서 영웅적인 존재였다. 일본은 패전 후 경제 재건도 그러했거니와 정신적인 힘의 충전이 절실했다. 미국에 대한 반감과 동경이 혼재하던 시대였다. 영웅은 늘 시대를 타고 태어난다고 했던가.

원자탄의 악몽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던 일본인에게 링 위에서 미국인을 비롯한 덩치 큰 서구인들을 때려눕히는 역도산은 단숨에 일본인의 가슴에 영웅으로 자리잡았다. 역도산, 기무라 마사히코 팀과 세계 태그매치 왕자였던 미국 샤프 형제의 경기는 지금도 일본인의 가슴에 기억되고 회자된다. 패전 후 9년이 지난 1954년 2월의 일이었다.

최근 한국에는 역도산 바람이 불면서 그에 대한 평가가 나오고 있다. 그가 한국인임을 밝히지 않고 레슬러로 활약했다는 것과 그의 사인(死因)을 둘러싼 여러 가지 진위(眞僞) 등도 세인의 관심거리다.

그러나 21세기의 우리는 이러한 요소들보다 더 중요한 것을 되새겨야 한다. 역도산의 도전정신이다. 17세의 나이에 한국인 김신락으로 일본에 건너가 그가 감내해야 했던 세월의 흔적은 우리가 상상하기 힘든 인고의 세월이었다. 그가 현해탄을 건너온 김일에게 한 말도 "현해탄을 건너왔으니 모든 것을 참고 견뎌라"였다.

우리가 지금 역도산의 이름을 곱씹어 생각해야 하는 것은 프로 레슬러로서의 영광이나 출세가 아니라 그 과정까지 이르렀던 그의 불굴의 의지다. 지칠 줄 모르고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 회한이 서렸던 스모를 그만두고, 미국으로 건너가 경이적인 기록(300여 회의 경기에서 5패만 기록)을 세웠다. 그것은 덩치 작은 동양인이라도 얼마든지 최고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의 확인이었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바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도전을 통한 가능성의 확인이다.

요즘 경제가 좋지 않다고들 한다. 우리는 지금 역도산이나 김일이 활약하던 시절보다 경제적으로 나아진 생활을 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정신적으로는 나약하다. 저마다 마음속의 영웅을 꿈꾸어야 한다.'역도산 선생이 계셨더라면 남과 북을 잇는 가교 역할을 충분히 하셨을 것'이라는 가정은 역도산의 불굴의 의지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새로운 영웅이 나와 우리의 지친 가슴을 풀어주길 바라기 전에, 스스로 과감한 도전정신과 불굴의 인내력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다시 비상을 꿈꾸어야 한다. 광복 60년, 우리가 왜 역도산과 김일의 이름을 되새겨야 하는지 자문해 볼 시점이다.

오석윤 동국대 일본학연구소 전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