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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 50년, 산울림 20년… 임영웅씨 자축 이벤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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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원로 연출가 임영웅(69.사진)씨에게 올해는 어느 해보다 특별하다. 연극판에 발을 들여놓은 지 만 50년, 서울 서교동 산울림 소극장이 문을 연 지 만 20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50년 전 서라벌예술대학 1학년생이던 그는 모교 휘문고의 요청을 받고 후배들을 지도, 연극 '사육신'을 만들어 제1회 전국 중.고등학교 연극경연대회에 출전했다. 이십수년 전엔 대한민국연극제 연출상 부상(副賞)으로 해외 연수를 하면서 그리스.이탈리아.프랑스 등의 연극판도 한국만큼 배고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소극장을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모교 연극반 지도로 시작한 임씨는 지금 "유치진, 이해랑의 맥을 잇는 정통 리얼리즘 연출가"(연극평론가 유민영)로 평가받는다. 산울림은 '위기의 여자''딸에게 보내는 편지' 등 히트작들을 쏟아내며 대표적인 소극장으로 자리잡았다.

자축 이벤트가 없을 수 없다. 임씨는 올해 다섯 편의 연극을 올리기로 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예상했겠지만 첫번째 작품은 사무엘 베케트의 부조리극 '고도를 기다리며'다. 물론 그가 직접 연출한다. 3월 11일 공연 시작이다. 여기서 잠깐 설명이 필요하다. '고도…'는 단순히 그의 대표작이라는 설명으로는 불충분하다. 그의 연극관과 삶을 대하는 자세를 드러내는 프리즘이자 창작의 원동력을 얻는 수원지 같은 작품이다. '고도…'는 1969년 임씨의 연출을 통해 비로소 한국 연극팬들에게 친숙하게 다가왔고 이후 차츰 다듬어져 프랑스와 일본, 태생지인 아일랜드에서도 '한국식 고도'만의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다.

지난 25일 극장 4층 연습실에서 배우들과 대본을 함께 읽으며 연습 중이던 임씨를 만났다. 몇번째 공연인지 물었다. 그는 "열아홉 번이나 스무 번쯤 될 것"이라고 답했다. 기록을 찾아보니 이번 공연은 스물한 번째. "그런데도 매번 새롭게 다가온다"고 그는 말했다.

여전히 알쏭달쏭한 '고도…'는 어떻게 감상해야 할까. 그는 "현대인을 발가벗겨 무대 위에 올려놓으면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낄낄거리며 웃게 된다. 한데 한참을 들여다 보면 무대 위의 인물들은 바로 나의 모습이자 우리들의 모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설명했다.

임씨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기다리는 고도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베케트도 언급하지 않았다. 정답이 없다. 배우나 관객이나 각자 스스로 상정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연극에 국한한다면 내게 고도는 연극인들이 좀 더 나은 환경에서 공연하는 시절이 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20년 전 산울림 극장을 세울 때와 비교해 공연 환경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그래서 일종의 소명의식, 의무감을 더 느낀다"고도 했다.

재미있는 사실 한가지. '고도…'의 공연 시간은 30여 년 전 2시간 30분에서 요즘은 15분쯤 줄어들었다. 임씨는 "그만큼 일상 대화의 속도가 빨라졌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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