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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물음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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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 그래서 세상은 무섭다. 물론 형님, 동생 하며 지내는 것이 다 헛것이라는 말은 아니다. 사실 잘나가는 사람들끼리 당장 잘 지내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서로가 ‘위광(威光) 효과’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지속되기는 결코 쉽지 않다. 어느 시점에선가 이해관계가 충돌하면 그것으로 끝인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그땐 한 치의 양보도 기대하기 어렵다. 김과 박의 관계도 그러했다. 오히려 끝까지 함께 가는 관계는 남들 눈에 그다지 광이 나지 않아 보이는, 평범하다 못해 어수룩한 경우다.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에 나오는 부자 유대인 할머니와 가난한 흑인 운전사처럼 말이다.

# 참 묘했다. 며칠 전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본 연극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는 유대인 할머니(손숙 분)와 그의 아들(장기용 분), 그리고 늙은 흑인 운전사(신구 분)가 등장하는 것이 전부이고 주고받는 대사도 이렇다 하게 힘준 대목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아주 일상적이고 평범했다. 근데 웬일인지 그 연극을 보고 있노라니 마음이 ‘싸~’했다. 꿈틀꿈틀 뭔가가 가슴과 혈관, 그리고 뇌리를 타고 흐르는 느낌을 주저앉힐 수 없었다.

# 까탈스러운 유대인 할머니와 별볼일 없어 보이는 늙은 흑인 운전사는 어머니가 사고를 내 비싼 보험료를 계속 무느니 차라리 값싸게 운전사를 고용해 비용을 줄이겠다는 나름 효자 아들의 철저한 유대인적 계산방식의 결과 만나게 된다. 하지만 집안과 내 차에 남을 들이고 싶지 않다는 유대인 할머니 데이지의 오기와 고집 때문에 흑인운전사 호크는 몇 날 며칠이 되도록 운전대 한 번 제대로 잡아보지 못하는 처지였다. 그러나 어찌어찌 해서 겨우 운전대를 잡게 된 이후 흑인 호크는 유대인 할머니 데이지를 더 없는 충직함으로 모셨다. 그 후 두 사람은 25년 넘게 삶의 황혼기를 함께 했고 어느새 늙은 흑인 운전사는 그보다 더 늙은 유대인 할머니가 내심 가장 믿고 의지하는 존재가 됐다.

# 1시간40분여 동안 쉼 없이 계속된 연극의 끝 대목에서 늙은 흑인 운전사 호크가 침침한 눈으로 흔들리는 손에 포크를 쥐고 파이 한 조각을 떼내어 거동 자체가 불편해진 데이지에게 떠먹이는 장면에서 정말이지 먹먹해졌다. 자식도 먼저 간 남편도 그 누구도 해주지 못하는 일을 보잘것없어 보였던 늙은 흑인 운전사가 끝까지 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 순간 데이지에게 가장 소중한 이는 바로 호크가 아니겠는가. 못생기고 굽은 나무가 끝내 산을 지킨다 했다. 돈도 권력도 기력도 떨어졌을 때 끝까지 함께 갈 사람은 결코 잘나 보이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 사람은 항상 먼저 떠난다. 스스로를 못난 사람이라고 낮추는 겸손하고 우직한 사람이 끝까지 같이 간다. 인생, 정치, 사업에서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요즘엔 그런 사람 구경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 바람 같은 인생, 별거 있나 싶다. 총리 한다 껍죽대다 호형호제 했다는 이의 비수 연타를 맞고 한순간에 날아가는 것도 인생이고, 세상에서 가장 보잘것없어 보이는 늙고 가난한 운전사가 모든 것을 다 가진 것 같은 부자 할머니의 인생버팀목이 돼 주기도 하는 게 우리네 삶이다. 그래서 어느 시인은 이렇게 말했는지 모른다. “…하나의 물음표(?)로 시작된/나의 인생은/몇 개의 느낌표(!)와/몇 개의 말 줄임표(…)와/몇 개의 묶음표(<>)와/찍을까 말까 망설이다가 그만둔 몇 개의 쉼표(,)와/아직도 제자리를 못 찾아 보류된/하나의 종지부(.)로 요약된다”(임영조의 ‘자서전’)고! 정말 그렇다!!

정진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