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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원화는 기축통화가 될 수 없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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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유로달러 시장은 냉전의 산물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과 소련 간 냉전이 시작되면서 소련과 위성국들은 고민에 빠졌다. 자신들이 보유한 달러 자산을 미국에 예금하자니 찜찜했던 것이다. 상황이 악화되어 두 나라가 혹시라도 전시(戰時)상태로 간다면 소련의 예금 인출이 동결될 가능성이 높다. 이때 등장한 대안이 유럽에 있는 은행에 달러를 예금하는 것이었다. 제3국(소련)이 미국과 상관없는 지역(영국)에 있는 은행에 예금하고, 이 은행들이 다른 제3국(예: 남미)에 자금을 대출해 주면서 달러 표시 자금이 미국과 상관없이 움직이는 무대가 형성된 것이다. 이러한 시장을 역외시장(external market)이라 부른다. 유로달러 시장은 역외시장의 대표적인 예다.

얼마 전 미국의 햄버거 체인 맥도날드는 2억 위안에 달하는 위안화 채권을 발행했다. 그런데 이는 중국 본토가 아닌 홍콩에서 발행되었기 때문에 판다본드가 아니다. 이 채권은 외국계 일반기업이 홍콩에서 발행한 위안화 채권 제1호다. 그뿐이 아니다. 최근 세계 최대의 사모펀드인 텍사스퍼시픽그룹(TPG)이 50억 위안의 위안화 펀드를 홍콩시장에서 조성하기로 합의했다는 소식도 전해지고 있다. 중국이 홍콩을 위안화 역외시장으로 활용할 것이라는 얘기는 오래전부터 들렸지만 이러한 움직임이 드디어 본격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일국양제(一國兩制) 덕분에 홍콩은 역외 및 역내 시장의 장점이 절묘하게 조합된 금융시장이다.

그런가 하면 2.5조 달러에 달하는 외환을 보유한 중국이 우리나라 국채를 본격 매입하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진다. 외환보유액은 당장 현금화할 수 있고 국제적으로 통용 가능한 화폐라야 한다. 그런데 중국은 기축통화도 아닌 우리나라 원화 표시 국채를 달러 기준으로 무려 37억 달러어치 정도 매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부분이다. 중국이 우리 채권을 사들이려면 원화부터 매수해야 하므로 원화 가치는 그만큼 올라간다. 그뿐이 아니다. 중국은 최근 일본 국채도 달러 기준으로 203억 달러어치 정도 사들였다. 금리가 낮은 일본 국채는 매력이 별로 없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엔화 가치도 엄청나게 절상됐다. 일본 수출업체가 비명을 지를 정도다. 일본 당국이 대응에 나서기는 했지만 영 못미더워 보인다. 중국이 한국과 일본 금융시장을 본격적으로 흔들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은 위안화를 전 세계가 사용하는 기축통화로 만드는 작업에 이미 착수했다. 지난해 3월 중국 중앙은행 총재는 달러의 기축통화 사용을 중지하고 IMF가 발행하는 SDR(특별인출권)을 기축통화로 사용하자는 폭탄발언을 해 미국을 긴장시켰다. ‘위안화 기축통화 만들기’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것이다. 중국은 홍콩이라는 최고의 무기를 가지고 있다. 홍콩을 위안화의 역외시장으로 활용하면서 이 작업은 탄력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위안화 결제은행들을 지정해 국제무역의 위안화 결제는 이미 가능해진 상태다.

막대한 외환보유액과 홍콩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 아시아를 넘어 세계를 좌지우지(左之右之)하며 세력 확장을 시도하는 중국을 보면 두려움이 앞선다. 그리고 여러 가지 질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아리랑본드의 발행은 판다본드를 10년 앞섰는데 과연 우리의 금융은 지금 중국을 10년 앞서 있는가. 우리 금융시장에 그랜드 플랜은 존재하는가. 대한민국판 홍콩은 과연 가능한 얘기인가. 원화의 기축통화화(化)는 불가능한 얘기인가.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경영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