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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보다 100여 년 앞선 고려시대 금속활자 12개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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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현존 최고(最古) 금속활자본인 『직지(直指)』(1377년)보다 100년 이상 앞선 연대의 금속활자가 무더기로 확인됐다는 주장이 나왔다. 다보성고미술관(관장 김종춘)은 고려시대 금속활자 ‘증도가자(證道歌字)’ 10여 개를 확인했다고 1일 밝혔다. 해당 활자를 분석한 경북대 남권희(54·문헌정보학) 교수는 “금속활자 50여 점을 4년여 다각도로 분석한 결과 ‘명(明)’ ‘어(於)’ ‘평(平)’ 등 12점이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보물 758호)』(이하 『증도가』)의 글자와 서체·크기 등이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며 “13세기 고려시대 금속활자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증도가』 말미에는 원래 금속활자로 인쇄한 책을 1239년 목판으로 번각해 찍었다고 적혀 있다. 적어도 1239년 이전 우리나라에서 금속활자로 『증도가』를 인쇄했음을 추정하는 근거가 돼 왔다. 그러나 실물 금속활자는 전해지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1377년에 제작된 금속활자본인 『직지』의 경우도 실물 활자는 없다. 학계는 금속활자는 마모가 심해지면 녹여서 새로운 활자를 만든 데다 임진왜란 때 소실돼 실물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왔다.

『남명천화상송증도가』에 적힌 ‘明(명)’자의 ‘날일(日)’변은 ‘밭전(田)’자에 가깝다. 『증도가』는 불교 선종의 지침서인 ‘증도가’에 고려 남명선사 법천이 해제를 달아 펴낸 책으로 금속활자본을 목판에 옮겨 고려 고종 26년(1239년) 다시 찍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 당시 영인본이 제작됐다. [다보성고미술관 제공]

남 교수는 “발견된 활자들 중 ‘明’자 등은 요즘 쓰지 않는 고자(古字)로 『증도가』와 일일이 대조했더니 서체는 물론 크기와 획의 삐침 등이 놀라울 정도로 일치했다”며 “글자의 획 사이에 먹과 흙이 묻어 있었고, 일부 획이 떨어지거나 부식이 진행되고 있어 오랜 기간 매몰됐다가 출토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남 교수의 연구실에서 몇몇 활자를 본 한국학중앙연구원 옥영정(서지학) 교수는 “明자 중 왼쪽의 ‘日’ 부분은 고려시대엔 ‘田’자 비슷한 모양이었고 조선 초기엔 ‘目’자로, 중기엔 ‘日’로 변했다”며 “활자에 새겨진 글자체와 크기·모양이 『증도가』의 서체와 일치한다는 점에서 고려시대 활자로 볼 수 있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활자 10여 개를 본 청주대 김성수(서지학) 교수는 “고려 활자로 확신하는 근거는 『증도가』와 서체가 똑같아 보였다는 것”이라며 “녹이 슨 상태로 볼 때 적당히 땅에 묻어 두어서 생긴 것이 아니라고 판단했지만 제작연대를 측정하는 것은 과학자들의 몫”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에 공개된 활자가 고려 금속활자로 공식 인정을 받기까지는 긴 논란이 예상된다. 무엇보다 출토지가 명확하지 않고, 금속의 절대연대를 측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팀 유혜선 연구관은 “유기물이 아닌 금속의 경우 탄소연대측정이 불가능하다”며 “금속활자는 출토지가 명확하지 않을 경우 연대를 가늠할 과학적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고려시대 금속활자는 그동안 남북한에 하나씩 단 두 점만이 전해 왔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복’ 활자, 북한의 개성역사박물관이 소장한 ‘전’ 활자다. ‘전’자의 경우 개성 고려 유적지인 만월대 부근에서 출토돼 고려활자라 추정되는 경우다. 남한의 ‘복’ 활자는 일제강점기에 고려무덤에서 도굴된 것을 1913년 이왕가박물관이 일본인 고미술상으로부터 사들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77년 손보기 연세대박물관장이 “복활자는 『증도가』의 활자체와 동일하고 구리·주석 등의 합금 성분이 고려 동전인 해동통보와 일치한다”며 고려시대 금속활자라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복활자는 국내 학계에서도 논란이 있어 문화재로 지정하지 못한 것은 물론 세계 학계의 인정도 받지 못하고 있다.

당시 손보기 교수가 국립광물지질조사소에 의뢰해 분석한 복활자의 금속구성비는 구리 50.9%, 주석 28.5%, 납 10.2%였다. 이번에 공개된 금속활자의 성분은 구리 38~45%, 주석 30~35%, 납 18~25%로 나타났다. 고활자 전문가인 국립중앙박물관 이재정 학예연구관은 “조선시대 금속활자의 경우 구리 성분비가 대개 70% 이상이다. 구리 함량이 그보다 못 미치면 물러서 활자로 쓸 수 없다”고 말했다. 부식이 심한 경우 분석 결과가 믿을 만하지 않다는 것도 문제다.

유혜선 연구관은 “동일한 쇠못도 어떤 환경에 두느냐에 따라 녹 스는 정도가 다르듯 금속활자 역시 부식물을 제거하지 않은 상태에서 분석하면 주조 당시의 금속성분비를 알 수 없다”며 “중앙박물관의 ‘복’ 활자의 경우 정확히 분석해 보고 싶어도 부식물을 제거하면 형태가 바뀔 수 있어 손대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김종춘 한국고미술협회장은 금속활자를 3일부터 다음 달 15일까지 서울 인사동 다보성고미술전시관에서 일반에 공개한다.

대구=송의호 기자, 서울=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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