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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북한산 둘레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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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등산도 세 단계가 있다. 먼저 후진국형이다. 여기서는 산이 좋아 산에 가는 게 아니다. 땔감과 먹을거리를 위해서다. 그래서 대부분 민둥산이 된다. 세계 최빈국인 네팔은 벌목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유엔이 이를 조건으로 국가 예산의 30% 상당을 지원한다. 지구적 차원의 환경 보호를 위해 히말라야 산림을 보전하려는 것이다.

다음은 개발도상국형이다. 시간을 재며 ‘고도 높이기’에 열중한다. 빨리빨리 속도전이다. 정상 정복을 인생의 목표 달성과 동일시한다. 왜 오르느냐 묻지 말란다. 에드먼드 힐러리의 “산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가 아니다. 시시포스 앞에 놓인 욕망과 숙명의 산이다. 이번에 밀어 올리면 바위가 더는 굴러떨어지지 않을 것 같은, 그래서 성취의 기쁨이 한없이 지속될 것 같은 등산이다. 올라가도 내려와야 하며, 또 다른 산이 기다리고 있다는 부조리한 진실을 애써 외면한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등산이 시작된다는데, 우리네 산은 사통팔달(四通八達)이다. 서울 주변의 불암산·수락산·도봉산·북한산엔 아예 고속도로가 났다. 이름이 ‘불수도북’이다. 주파시간은 24시간이란다. 그리하여 히말라야의 사나이 엄홍길도 가끔 북한산에서 체면을 구긴다. 높이가 에베레스트(8848m)의 10분의 1도 안 되는 836m다. 그런데 초보 등산객들이 엄홍길을 휙휙 추월하는 것이다.

이런 산행에 최근 변화가 생겼다. 둘레길이다. 강화도에서 시작해 지리산과 내장산·월출산을 거쳐 북한산에도 생겼다. 이는 위를 향해 오르는 게 아니라 옆으로 도는 산길이다. ‘앞으로 나란히’의 무한경쟁에서 벗어나 ‘좌우로 나란히’의 공존공영 시대를 반영한 것일까. 굳이 정상까지 오르지 않아도 산록을 거닐며 자신을 찾는 산행이다. 바로 트레킹이 발달한 선진국형이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적극 환영이다. 모두가 정상에 오르니 산꼭대기 훼손이 심했다는 것이다.

물론 정상이 아니면 “야호~”를 외치기 멋쩍다. 또 전문가는 몇십m만 부족해도 실패라며 시시비비다. 하지만 꼭 정상에 올라야 산을 아는 건 아니다. 오히려 오르는 길에선 산을 보지 못한다. 앞선 이의 뒤꼭지나 봤을까. 산자락 곳곳에 깃든 수많은 절경과 애틋한 사연을 놓치는 것이다. 이를 더듬는 것이야말로 ‘나를 찾아 산을 찾는’ 것 아닐까. 세상의 지붕을 거닌 엄홍길이 사람의 가슴에 베이스캠프를 치겠다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최근 개방된 총 길이 44㎞ 북한산 둘레길이 서울시민 가슴에 배려와 여유를 찾아줬으면 좋겠다. 

박종권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