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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서민 정책, 경제 건전성 해칠 우려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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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따라서 각 경제주체의 의사결정이 얼마나 건전한가에 따라 경제 전체의 건전성이 결정된다. 각 주체의 의사결정이 불합리한 만큼 경제 전체의 생산성과 건전성도 훼손되게 된다.

문제는 소비자, 근로자, 기업, 은행과 같은 경제주체의 의사결정이 사적으로는 아무리 합리적인 것이라고 해도 경제 전체적으로는 불건전한 결정이 될 수 있다는 데 있다.

1997년의 한국 외환위기와 2008년 미국 금융위기가 전형적인 사례다.

따라서 시장경제에서 정부가 담당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의 하나는 경제주체들의 개별적 의사결정이 경제 전체의 건전성 유지와 부합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오히려 정부가 경제주체들의 합리적 의사결정을 저해하여 경제 전체의 건전성을 훼손하기도 한다.

정부가 경제주체들의 건전한 의사결정을 저해하는 과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정부가 세금이나 규제를 통해 가격구조를 왜곡하여 잘못된 가격신호를 경제주체들에게 주는 경우다.

에너지 가격을 낮게 유지하면 경제 전체적으로는 에너지 과소비를 초래한다. 고소득에 중과세하면 생산성이 가장 높은 사람들의 경제활동 유인을 줄여 경제 전체적으로 생산성을 떨어뜨린다. 대출규제를 완화해서 신용도가 낮은 사람들도 대출을 받을 수 있게 해주면 경제 전체적으로 부실채권이 증가한다. 이런 정책들은 정치적으로는 인기가 있겠지만 경제 전체의 건전성은 훼손한다.

다른 하나는 정부가 경제주체들에게 자신들의 잘못된 의사결정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거나 누군가 대신 보상해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도록 하는 경우다.

투자를 해서 이익이 나면 모두 내 돈이고, 손해가 나면 누군가 대신 갚아줄 것이라고 믿으면 과도한 리스크를 지는 것이 당연하다.

책임질 일을 저지르고 나서 버티고 우기다 보면 해결된다는 선례가 생기면 정직한 사람들조차 버티기와 떼쓰기에 나설 것이다.

반복되는 부채탕감, 반복되는 특별사면 등도 모두 도덕적 해이를 초래하는 일이고, 그 결과가 무엇인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어느 조직이라도 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는 순간 그 조직은 방만해진다. 최근 우리 경제에 문제가 되고 있는 일부 공기업과 일부 지방자치단체들의 과도한 부채와 방만한 경영은 이들이 특별히 무책임하거나 무능해서가 아니다. 그들은 매우 합리적이고 전략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공기업이나 지방자치단체가 과도한 채무로 인해 도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현 정부 출범 초기에 추진한 감세, 공기업 개혁, 규제개혁, 경쟁력 강화 등의 정책은 그 이전 정부가 만들어 놓은 비효율과 성장저해 요인을 바로잡고 경제의 생산성과 건전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었다. 친기업 정책이라고 했지만 경제를 활성화하고 일자리를 만드는 것 이상의 친서민 정책은 없다.

지금 정부가 추진하는 햇살론, 미소금융, 보금자리주택, 등록금 후불제와 같은 정책은 서민생활 안정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좋은 정책들이지만 만약 추진과정에서 가격왜곡이나 도덕적 해이가 초래된다면 장기적으로는 한국 경제의 건전성을 훼손할 수 있다.

특히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는 각종 서민대출이 자칫 안 갚고 버티면 될 것이라는 도덕적 해이의 덫에 빠질 수도 있다.

국민을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일하도록 만드는 정책은 경제를 발전시킬 것이고, 국민을 나누어 먹기에 몰두하고 남에게 의존하도록 만드는 정책은 경제를 침체시킬 것이다. 경제가 활력을 상실하면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사람들은 서민들이다.

김종석 홍익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