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 음란물에서 떼어놓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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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희(가명·41)씨는 얼마 전 초등 6학년 아들이 잠도 못 자며 공부를 하는데 성적이 오르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전문가를 찾았다. 그런데 밤마다 아이 눈을 빨갛게 만든 것은 공부가 아니라 ‘음란 동영상’이었다. 사춘기에 접어든 자녀의 이런 행동으로 마음고생을 하는 부모들이 적지 않다.

음란물 접하는 자녀 처음 알게 됐을 때 ‘마음 다스려야’

음란물을 처음 접하는 시기가 점점 낮아지고 있다. 부모들은 ‘우리 아이는 아니겠지’라고 믿었다가 우연히 음란물을 보는 자녀를 목격하고 크게 당황한다. 아하!청소년성문화센터 이명화 센터장은 “자녀가 성적인 용어를 자주 사용하거나, 화를 잘 내거나 얼굴이 종종 붉어진다면 의심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자녀가 음란 동영상을 보는 것을 목격했을 때 엄마와 아빠의 반응은 대개 다르다. 엄마는 발견 즉시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반면 아빠는 ‘그러면서 크는 것’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려 한다. 엄마처럼 흥분해도, 아빠처럼 무심하게 넘겨도 안 된다. 이 센터장은 “예전과 달리 음란물이 다양해지고 선정성, 비윤리성이 점점 심화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먼저 부모의 마음부터 다스리는 것이 중요하다. ‘내 아이도 성장하고 있고, 자연스럽게 성적 호기심을 갖게 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사춘기가 되면서 성적 호기심이 생기고 음란물에 관심을 갖기 마련이다.

이 센터장은 “음란물을 처음 접하는 시기는 개인적 특성보다는 사회적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한국컴퓨터생활연구소 어기준 소장은 “예전에는 초등학교 때 처음 음란물을 접해 중학교 때 활발하다 고등학교 졸업 후 시들해지는데 요즘에는 초등학교 때 활발한 경우도 종종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반 발짝 앞선 성교육’이 필요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말 꺼내기 어렵다면 자녀 얘기 그냥 들어줘

성범죄에 있어 음란물이 문제가 되는 것은 모방 때문이다. 나이가 어릴수록 모방행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 센터장은 “성이 무엇인지 개념 조차 없는 나이에 음란물을 접촉하면 그 속에 표현된 왜곡된 성의식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사랑을 얻기 위해서라면 강제로 상대방의 성을 무너뜨려도 된다고 오해할 수도 있다.

아이들은 음란물에서 본 내용에 대해 궁금증이 많아진다. 예컨대 ‘왜 저런 행위를 하는 걸까’ ‘우리 부모도 그럴까’ 궁금해 혼란을 느낀다. 혐오감이나 죄책감을 느끼는 경우도 적지 않다. 어 소장은 “성의식에 대한 아이들의 수준이 극과 극”이라며 “예전에는 성을 접할 수 있는 방법 자체가 적었지만 지금은 원하지 않아도 접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고 말했다. 이 센터장은 “처음 음란물을 접하는 시기는 가능하면 늦은 나이거나 성교육을 받은 이후가 좋다”고 설명했다. 성교육을 통해 미리 예방주사를 맞춰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평상시 부모가 먼저 ‘성’에 대해 말을 꺼내기는 쉽지 않다. 그럴 때는 일단 자녀의 말을 들어준다. “네가 이런 것에 관심을 가질 정도로 성장했구나”라는 말과 함께 음란물을 보고 어떻게 느꼈는지, 아이가 혼란스러워하지는 않는지 들어주는 기회를 갖는 것이 좋다. 엄마가 부담스럽다면 아빠나 삼촌, 믿을 수 있는 윗사람의 도움을 받도록 한다. 이 센터장은 “누군가와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로 아이들은 성에 대해 자연스럽게 배우는 계기를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이들은 친구들 사이에서 성을 접하는 경우가 많다. 어 소장은 “게임을 알아야 친구들 사이에서 소외되지 않는 것처럼 자녀가 성에 대해 전혀 모른다면 친구 관계도 확인해 봐야 한다”고 당부했다.

차단 프로그램은 자녀와의 합의하에

컴퓨터에 음란물 차단 프로그램(방송통신심의위원회, www.greeninet.or.kr)을 설치할 때는 자녀에게 이유를 설명해주거나 동의를 얻은 후 설치한다. 부모가 자녀를 못 믿어서가 아니라 갑자기 생길 수 있는 상황에서 안심하고 컴퓨터를 사용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말해야 한다. 성에 대한 호기심을 그때 그때 해결 할 수 있는 성문화센터나 성교육기관 등을 인터넷 즐겨찾기에 추가해 두고 도움을 받도록 한다.

어 소장은 “하지만 기술적으로 음란물을 원천 봉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대신 접속할 수 있는 빈도를 줄이고 부모가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부모가 컴퓨터를 다룰 줄 알고 가끔 집에 있는 컴퓨터를 사용하면 음란물 접근을 자제할 수밖에 없다. 이 센터장은 “토론하거나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라면 학교 특별활동이나 또래 문화 속에서 성에 대해 토론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도록 권하라”고 말했다. 예컨대 우리 문화 속의 잘못된 성을 찾아보고 스스로 비판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운다. 활동적인 아이는 스포츠나 예술분야에서 능력을 키우고 발휘함으로써 자기계발에 투자할 수 있게끔 지지해 준다.

< 박정현 기자 lena@joongang.co.kr >
[사진=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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