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도] 최민호, 그때 그 눈빛 찾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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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9일 개막하는 유도 세계선수권대회를 앞두고 용인대에서 한창 훈련 중인 최민호. [장치혁 기자]

해맑은 그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2008 베이징 올림픽 남자 유도 60㎏급 금메달리스트 최민호(30·한국마사회)는 요즘 새삼 유도의 재미에 빠져 있다. 방황이 길었다. 하지만 번민이 있었기에 다시 매트 위에 섰다. 지나간 1년 반을 만회하기 위해 최민호의 이마에는 구슬땀이 마를 새가 없다. 그의 시선은 다음 달 9일 일본에서 시작하는 세계선수권을 향해 있다.

#목표를 잃자 몸이 유도를 거부했다

올림픽 금메달을 향해 무작정 달려온 최민호였다. 하지만 유도 인생에서 올림픽 금메달이 전부는 아니었다. 올림픽 후유증은 생각보다 컸다. 싫어도 가야 하는 행사가 줄을 이었다. 돈 문제까지 그를 괴롭혔다. 라면광고 출연료 분배를 놓고 에이전트와 불거진 송사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목표를 잃은 최민호의 몸은 유도를 거부하고 있었다. 7~8㎏을 감량해야 하는 살인적인 체중조절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최민호는 66㎏급으로 올릴 결심을 했다. 하지만 벽에 부닥쳤다. 체급별로 엘리트를 육성하는 대한유도회가 허락하지 않았다. 66㎏급에는 김주진(24·수원시청)이란 기대주가 있다. 하지만 60㎏급에는 최민호에 필적할 선수가 없었다. 최민호는 “1년 정도 66㎏급에서 뛰면서 여유를 찾고 싶었다. 뜻대로 되지 않으니 운동에 집중할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최민호는 2009년 8월 네덜란드 세계선수권 32강전에서 탈락했다. 이미 연골이 닳아 없어진 오른쪽 어깨가 매일 그를 괴롭혔다. 해결책이 보이지 않았다. 변화가 필요했다.

최민호는 정훈 유도대표팀 감독을 찾아갔다. 그리고 태릉선수촌을 떠나게 해달라는 폭탄선언을 했다. 쉬더라도 태릉선수촌에서 지내라고 반대한 정훈 감독은 한국마사회 이경근 감독까지 합세한 읍소에 두 손을 들었다. 정 감독은 “다른 선수와의 형평성을 고려해야 했다. 하지만 한번 마음 먹으면 무섭게 훈련에 빠져드는 최민호의 능력을 믿고 보내줬다”고 말했다.

#유도를 떠나니 유도가 보였다

최민호(오른쪽)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남자 유도 60㎏급 결승에서 루트비히 파이셔(오스트리아)를 들어 메치기 한판으로 제압하고 있다. [중앙포토]

소속팀으로 돌아온 최민호는 재활에 매달렸다. 책도 보고 영화도 즐겼다. 최민호는 “유도를 떠나니 유도가 보였다”고 했다. 그는 지난 3월 태릉선수촌으로 돌아갔다. 정훈 감독은 말없이 그를 받아줬다. 최민호는 “올림픽 때만 해도 그저 힘으로 한 것 같다. 이제 상대의 움직임이 보인다. 유도를 하는 재미가 새롭다”고 말했다.

어깨 통증은 사라졌다. 죽을 것 같던 감량도 이제는 없다. 마음이 편해지자 폭식이 사라졌다. 최민호는 “스트레스가 쌓일수록 음식에 손이 갔다. 요즘은 많이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며 웃었다. 68㎏까지 올라갔던 최민호의 체중은 이제 64㎏를 넘지 않는다. 훈련 직후에는 62.5㎏이다. 세계선수권을 앞두고 무리한 감량이 필요 없는 상태다. 최민호는 3월과 6월 열린 대표선발전에서 연거푸 우승해 세계선수권과 11월 광저우 아시안게임 대표 자격을 따냈다. 그는 “오랜만에 큰 대회를 앞두고 자신감이 생긴다. 기대해도 좋다”고 각오를 밝혔다.

유도대표팀은 일본 도쿄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에서 최민호를 비롯해 왕기춘(용인대·73㎏급), 김재범(한국마사회·81㎏), 김주진, 이규원(용인대·90㎏) 등에게 금메달 3개 이상을 기대하고 있다 지난해 네덜란드 대회에서는 왕기춘과 이규원이 금메달을 땄다.

글, 사진=장치혁 기자



최민호(30)는 …

▶ 1980년 8월 경북 김천생 ▶ 경북 경산 진량고-용인대-한국마사회

▶ 주요 경력(60㎏급)

-2009 세계선수권 1회전 탈락  -2008 베이징 올림픽 우승 -2007 세계선수권 3위 -2006 아시안게임 대표 탈락

-2005 세계선수권 대표 탈락 -2004 아테네 올림픽 3위 -2003 세계선수권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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