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사설

청문회 효과, 느리지만 역사의 진보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청문회 파동 이후 국민의 마음은 휴가철이 지난 계곡 같다. 몰래 버려진 쓰레기가 여기저기에서 뒹군다. 그렇다면 청문회는 황량함만 남긴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느리지만 그래도 조금씩 한국 사회는 ‘깨끗하고 공정한 사회’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봐야 한다.

1960년대 경제개발을 시작하면서 한국 사회는 고속·압축성장으로 매진했다. 그런 과정에서 공정·청정(淸淨)·청렴 같은 데에 쏟는 사회적 에너지는 미약했다. 88년 서울 올림픽에 이르러 경제발전은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다. 그러자 이번에는 민주화와 노동운동·남북화해·이념운동 같은 물결이 휩쓸었다. 공직자의 법적·도덕적 공정성이 사회의 주요 담론으로 등장한 건 93년 김영삼 정권의 공직자 재산 공개 때였다. 이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국회의원·법관 등 대표적인 사회 지도층이 재산을 형성하면서 법적·도덕적 경계선을 얼마나 유린했는지 국민은 생생히 목격했다. 현직 국회의장과 대법원장이 ‘부(富)의 도덕성’이란 태풍에 떠내려가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이때부터 재산의 등록과 공개는 금융실명제와 함께 사회의 법과 도덕을 감시하는 중요한 도구가 되었다.

95년에는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천문학적 비자금이 폭로됐고, 두 사람은 사법처리를 받았다. 두 사람 이후 대통령의 비리라는 부분에서는 일정한 개선이 이뤄졌다. 김영삼에게는 92년 대선자금의 안기부 계좌 은닉, 김대중에게는 비자금 계좌 의혹이 남아 있다. 노무현에게는 가족의 뇌물수수 사건이 있었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의혹의 액수도 줄어들었고 어쨌거나 수갑 찬 전직 대통령은 없다.

2000년에는 국무총리 등에 대한 인사청문회 제도가 도입됐으며 2005년엔 적용 대상이 국무위원 등으로 확대됐다. 제도가 도입된 이래 총리 후보자 2명과 감사원장 후보자 1명이 임명동의 투표를 통과하지 못했다. 총리 후보자 1명, 장관 후보자 4명이 사퇴했으며, 대통령이 지명을 철회한 장관 후보자도 3명이다. 모두 11명이 청문회라는 여과장치에서 걸린 것이다. 민주당 정권 4명, 한나라당 정권 7명이니 청문회라는 견제장치는 정권과 상관없이 작동되고 있는 것이다. 2004년엔 ‘오세훈 법’으로 불리는 법 개정이 이뤄져 정경유착의 커다란 고리가 끊어졌다.

물론 아직도 허점이 많다. 위장전입만 봐도 이 정권 들어 법무부 장관·검찰총장·대법관이 허물을 안고 법을 집행하는 자리에 올랐다. 후보자마다 잣대가 다른 점도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공직자의 도덕성을 견제하는 장치는 나름대로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 역사는 이렇게 느린 속도나마 진보하고 있다.

이제 공직자뿐 아니다. 국민의 도덕적 기준은 과거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이런 시대적 요구 때문이다. 우리 사회 전반이 개발시대의 편법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청문회를 통해 쌓아온 도덕성과 공정성의 기준을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도덕률로 정착시켜야 한다. 이번 청문회 파문을 부끄러운 자화상으로만 치부할 일이 아니다. 선진국으로 가는 진통으로 여기고, 국격(國格)을 높이는 교훈으로 만들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