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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대통령 글씨 현판 논란 증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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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 이승만 전 대통령이 쓴 강원도 고성의 청간정 현판(사진 (上)). 전두환 전 대통령이 쓴 경남 합천 소재 임란창의기념관의 창의사 현판(中). 노태우 전 대통령이 쓴 대구 동화사의 통일기원대전 현판(下).

전직 대통령들이 남긴 친필 유물에 대한 교체 여부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문화재청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광화문'현판을 바꿀 것을 검토하면서 다른 대통령의 친필 휘호도 함께 도마에 오른 것이다.

전직 대통령들이 남긴 글씨로는 서울 국립중앙도서관 앞 바위의'국민독서교육의 전당'(전두환),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앞 바위 '예술창조의 샘터, 문화국가의 터전'(노태우), 경남 거제시 해금강 휘호비의'천하절경해금강(天下絶景海金剛)'(김영삼), 전남 목포시 종각의 '새 천년의 종'(김대중) 등이 있다. 경찰청 1층 로비 벽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쓴 '호국경찰(護國警察)'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으나 지난해 말 경찰청이 무궁화 그림액자로 이를 덮어 씌웠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국가정보원 원훈석(院訓石)에 '정보는 국력이다'라는 글씨를 남겼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 '네이버'의 게시판에는 26일 "자기 글씨를 남긴 역대 대통령 리스트를 보니 정치 제대로 못하고 무고한 시민 학살한 사람들이 많다. 따라서 현판이나 비문 등을 바꾸는 게 옳다"(abdions)는 글이 올라왔다. 이에 대해 'xeric73'라는 네티즌은 "이게 그렇게 중요한 일이던가? 부끄러운 독재자의 자취도 역사적 사료는 역사적 사료"라고 맞받았다.

일반인들의 의견도 엇갈렸다. 회사원 배형은(25)씨는 "대통령에 대한 평가와 글씨가 있는 장소의 상징성 등을 고려해 문제가 있는 것은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시민 정준영(65)씨는 "전직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개인마다 다를 수 있으며, 그들이 남긴 글씨의 의미를 몇몇 사람이 규정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황평우 문화유산정책연구소 소장은 "독재자들이 자신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 만들어 놓은 유물은 역사적 의미를 생각할 때 당연히 교체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이태진(국사학) 서울대 교수는 "지나간 시대에 대해서는 비판도 하고 반성해야겠지만 역사자료는 남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한글학회 등으로 구성된 '광화문 한글 현판 지키기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 "한글은 경복궁에서 만들어진 만큼 한글 현판이 경복궁 공간 성격과 가장 잘 맞다. '광화문'이란 현판이 군사 독재의 얼룩이라는 주장도 있으나 박 전 대통령이 천대받던 한글을 살리기 위해 노력한 것은 칭찬받아 마땅하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정치인의 잘잘못을 그대로 놓아두는 것이 참된 역사 보전"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백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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