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술국치’는 살아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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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외교 현장은 존재한다. 미국 수도 워싱턴 DC에 살아있다. 그곳에 대한제국 공관이 남아 있다.(사진1) 고종의 밀명으로 설치한 대사관이다. 1891년 내탕금(內帑金, 황실 비자금)으로 샀다. 건물의 외관은 100년 전 그대로다. 빅토리아풍의 적갈색 3층 건물. 균형 잡힌 미려(美麗)한 외모를 강렬하게 뿜어낸다.

‘대조선주차 미국화성돈 공사관’(大朝鮮駐箚 美國華盛頓 公使館)-. 그 시절 이름이다. 화성돈은 워싱턴의 한자표기, 공사관은 지금 대사관과 같다. 조선의 유일한 해외 상주공관이었다. 그곳에 서려 있는 독립 의지와 비극적 최후는 선명하다. 건물은 워싱턴 중심가에 있다. 백악관에서 자동차로 북동쪽 10분 거리(로간 서클)다.

건물의 생존은 기적이다. 일본에 빼앗긴 뒤 한 세기의 풍파를 피했다. 그 역사적 가치는 압도적이다. 희소성, 보존성에서 절대적이다. 비교할 대상이 없다. 하지만 여전히 방치 상태다. 정부의 매입 의지와 시도는 시원치 않다. 그 과정을 알수록 씁쓸함은 커진다. 그 기막히고 한심한 사연은 이렇다.

공관 존재가 확인된 것은 1980년대 중반이다. 7년 전쯤 공관 되찾기 운동이 벌어졌다. 교민, 지식인, 종교인들이 앞장섰다. 그때 우리 정부는 무관심했다. 물론 권태면 주코스타리카 대사 등 뜻있는 공직자가 일부 있었다. 민간 쪽 운동은 힘에 부쳤다.
지난해 정부가 나섰다. 30억원의 예산(문화관광부)을 잡았다. 구입 실무는 워싱턴 주재 외교관들이 맡았다. 집주인은 미국인 변호사다. 그는 건물 가치를 알고 있다. 시가보다 2배쯤(40억∼44억원) 가격을 불렀다. 흥정은 깨졌다. 정부는 포기했다. 30억원을 예산불용액으로 처리, 반납했다. 올해는 예산 책정도 하지 않았다.

나는 공관을 장기간 추적해왔다. 거기에 뜻있는 사람들과 모임도 가졌다. 그 모임에서 나온 이야기다. “집주인의 돈 욕심을 성토하는 것으로 정부 임무가 끝난 셈이다. 돈이 모자라서 포기했다니 어이없다. 그 귀중한 건물은 중국·일본에 없다. 그곳에서 19년간 12명의 조선 공사가 활동했다.” “타워팰리스 아파트의 큰 평수보다 값이 낮은데…OECD 회원국이 그걸 사지 못하다니 답답하다. 문화 이벤트 예산을 조금만 아껴도 구입할 수 있는데.”

G20 서울정상회의 개최는 국력이다. 그러나 10억원이 부족해 결정적인 역사 현장은 후세에 온전히 편입되지 못했다. 그 치명적인 불균형은 무엇 때문인가. 구입 실패는 공직 사회의 의식을 반영한다. 역사 인식의 빈곤과 무관심은 충격적이다. 역사 현장 확보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런 둔감함은 역사학계에서도 발견된다. 연구의 현장성은 미숙하다.

망국의 결정타는 1905년 9월 포츠머스(미국 뉴햄프셔주) 조약이었다. 러·일 전쟁을 마감한 조약이다. 중재국 미국은 휴양지 포츠머스를 소개했다. 워싱턴의 더위를 피하려 했다. 그곳 해군기지 안에서 회담이 열렸다. 105년이 지났지만 협상 장소(사진2)는 그대로 남아 있다. 그 장소의 의미는 상당하다.

승전국 일본은 회담 장소로 연방정부 구역을 요구했다. 뉴햄프셔 주 정부의 영향력을 감안했다. 연방과 주 정부의 미묘한 관계를 의식한 것이다. 미국은 회담 장소를 연방 관할인 해군 기지에 마련했다. 일본 외교의 치밀함이 넘쳐난다. 현장에 가지 않으면 일본 침략 외교의 깊이와 세밀함을 실감할 수 없다. 일본은 그 회담으로 조선에 대한 외교 포위망을 완성한다. 을사늑약(勒約)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그 협상 장소를 가봤다는 우리 전문가는 거의 없다.

망국 100년이다. 비분강개(悲憤慷慨)가 우리 사회 한쪽에서 넘친다. 하지만 후일을 모색하는 실질은 허술하다. 공사관 매입의 집념 부족도 그 때문이다. 경술국치는 그렇게 살아있다.

박보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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